땡볕 속 / 돌배가 익는다
아파트 한 모퉁이 돌배가 익는다
아파트에 악어는 없지만
익어도 악어도 거들떠보지 않을
돌배가 익는다
악어새도 안 쪼아 먹을 돌배가 익는다
화단에 담뱃불 지져대는 아저씨
담뱃재 터는 아저씨
그래도 돌배는 익는다
콘크리트 절벽을 보며 돌배는 익는다
접시 깨지는 소리 속에 돌배는 익는다
심장 속 모래알들 서걱거린다
진땀 흘리지 않고
속으로 울지 않고
천천히 돌배는 익는다
단단하게 / 딴딴하게 돌배는 익는다
향기 아닌 온갖 것 향기가 될 때까지
오래 익어도 끝끝내 익지 않는 / 돌배




감상) 계절에 전혀 관심이 없어도 돌배는 익고, 밤톨은 벌어져 익어 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야생의 돌배는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서도 딴딴하게 익어 간다. 백석 시인의 시에 “돌배 먹고 앓은 배를 아이들은 띨배(산사열매로 체한 데 먹는 약재)를 먹고 나았다.”「여우난골」고 하였는데, 그만큼 돌배는 과육이 적고 맛이 시큼하니 더욱 관심 없다. 돌배는 짱돌처럼 나름대로 단단하게 향기를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땡볕을 견디고 있다. 완전히 익어야 온갖 것의 향기를 품을 수 있으므로.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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