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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와 트럼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8월30일 18시12분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독일의 패망이 코앞으로 다가섰다.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듀이를 물리치고 4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전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영·소 3국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2월 얄타에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등 3 거두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처칠의 회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에게 많은 양보를 선심 쓰듯 했다. 두 개의 임시정부를 갖고 있었던 폴란드의 독립문제에 있어서도 처칠이 지지하는 임정을 거부하고 스탈린이 지지하는 임정을 승인, 스탈린의 손을 들어줬다. 그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소련이 폴란드의 동쪽 영토를 갖는 대신 폴란드는 잃은 만큼의 영토를 독일 영토에서 보장받는 것에도 합의해 주었다.

독일로부터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야겠다는 스탈린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면서 더 큰 호의를 베풀었다. 소련이 일본으로부터 쿠릴열도를 얻고 덧붙여 중국으로부터는 군사기지와 그 밖의 이권을 얻도록 양해됐다. 결론적으로 얄타회담은 루스벨트에 의해 2차대전에서 소련을 실질적인 승리자로 인정한 꼴이 돼버렸다. 그 대가로 스탈린은 새로 만들어지는 국제연합에 가입하고 독일 항복 이후 3개월 내에 일본에 대한 전쟁에 참여하기로 했다.

루스벨트는 전후에 확고한 평화가 유지되려면 반드시 3국의 협조체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 스스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려 했던 것이다. 즉, 세계평화를 위한 운전대를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련에 호의를 베푼 루스벨트의 얄타 외교에 대한 비판이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처칠은 스탈린의 야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동유럽과 극동에 공산세력의 확대를 노리는 스탈린의 공산주의 팽창 전략을 간파하고 있던 처칠은 루스벨트의 양보외교 저지에 안간힘을 다했다. 루스벨트의 양보외교는 자신의 조정능력을 과신한 탓이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서 북핵 폐기의 확실한 보장도 없이 한미훈련 중단을 김정은에 선심 쓴 트럼프의 대북 외교가 김정은의 비핵화 꼼수에 바가지 쓴 꼴로 꼬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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