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로 이어진 동해 바닷길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감탄 가득

강구항 전경
영덕의 블루로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바닷길’이자 해파랑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이다.

블루로드는 해안을 따라 A코스(빛과 바람의 길·17.5㎞), B코스(푸른 대게의 길·15.5㎞), C코스(목은 사색의 길·17.5㎞), D코스(쪽빛 파도의 길·14.1㎞) 등 4개 코스로 나뉜다. 대부분의 해파랑길 탐방로가 산림으로만 형성돼 있지만 영덕 블루로드는 청정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덕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길은 ‘푸른 대게의 길’로 불리는 B코스다. 바다가 시야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호젓하게 걷고 싶다면 A코스 ‘빛과 바람의 길’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고불봉에서 바라본 풍력발전단지 전경


A코스는 ‘블루로드(Blue Road)’란 이름을 처음 낳게 한 길이다. 보통 강구항을 출발해 풍력발전단지까지 걷지만, 그 반대로 영덕역에서 출발해 고불봉~풍력발전단지 갈림길~바다가 잘 보이는 봉우리~금진구름다리~강구항~강구터미널까지 약 9㎞로 걷는 내내 쪽빛 바다를 보일 듯 말듯 숨겨 놓아 더 매력을 지닌 길이다.

지난해 개통한 포항역에서 영덕역까지 가는 동해선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걷기 시작은 새로 신축된 영덕역을 빠져나와 오른쪽 고불봉으로 가는 길과 블루로드 안내판이 보이는 지하도를 따라간다.
영덕역에서 고불봉 가는 지하도 입구
지하도를 빠져 나오면 ‘고불봉(해맞이) 등산로’라는 안내판이 반긴다. 최근에 낸 산길은 살짝 오르막이다.
나무계단으로 만든 오르막길
20여 분쯤 오르자 3코스 하산길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 즉 고불봉으로 향한다. 짧은 거리지만 금세 땀이 날 정도로 급경사다. 어김없이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놨다. 고불봉 정상에는 정자와 탁자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영덕 읍내와 영덕읍을 가로지르는 오십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동해 쪽은 일망무제 푸른 바다다.

고불봉(高不峰)은 경북 영덕군 영덕읍 내에 있는 자그마한 ‘뒷산’으로 해발 235m에 불과하다. 문헌에는 영덕 화림산 일맥이 천천히 달려 내려와 무둔산 자락에서 숨을 고르며 영덕의 정기를 받아 동으로 다시 달려 봉우리를 만드니 이것이 곧 고불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해에서 떠오른 보름달이 두둥실 봉우리에 걸치면 봉우리도 둥글고, 달도 둥글다 하여 망월봉(望月峰)으로 불린다.

옛날 동해의 붉은 해가 심해 깊숙이 잠겨 있고 그 붉은 기운만이 적막강산을 휘감을 때 붉은색 비단이 덮이듯 새벽 구름에 싸여 있는 고불봉의 모습을 불봉조운(佛峰朝雲)이라 했단다. 불봉조운은 영덕팔경 중 하나일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워 영덕에 유배 온 고산 윤선도는 고불봉 밑에 유배소를 정하고 ‘고불봉’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고불봉 정자 바로 아래 있는 이정표를 보니 강구항 8.4㎞,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가는 숭덕사까지 1.7㎞라고 쓰여 있다. 저 멀리 해맞이 공원에 들어선 풍력발전단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풍력발전기는 유럽과 미국 등에 주로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24기의 거대한 피조물이 쉬익쉬익 바람을 가르며 쉼 없이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를 바라보면 한 편의 공상과학영화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바람을 이용한 국내 최대 상업용 발전단지로 연간 9만6천680㎿의 전력을 생산하며, 인구 2만 가구가 조금 넘는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라고 한다.

고불봉에서 강구항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풍력발전단지로 연결된 갈림길이 나온다. 풍력발전단지 7.4km, 강구항 8km 이정표를 보며 강구항을 향해 곧바로 능선 따라 걷는다. 능선을 요리조리 걷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산림녹화탑을 에둘러 돌아가다 보면 숭덕사 갈림길이 나오고 강구항까지 7㎞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한동안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땀이 살짝 날 정도지만 걷기에는 부담이 없다. 여전히 바다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계속 걷다 ‘바다가 잘 보이는 봉우리’ 표지판에서 잠시 쉰다. 그동안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져 바다는 보이지 않기에 ‘바다가 잘 안 보이는 봉우리’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솔향기 가득한 숲길
여기서부터 비교적 평탄한 흙길에 아름드리 해송이 빽빽한 숲길이 한참 동안 이어지기도 하고, 굴참나무 등 잘생긴 나무들이 길옆에서 반갑게 맞아준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길은 널찍해 여럿이 함께하거나 연인과 손잡고 걸어도 넉넉할 만큼 좋다. 세상사 시름을 잠시 잊고 걷다 보니 해맞이가 좋은 봉우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번 걷기는 능선 어디서든 자리만 잡으면 동해와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숲에 가려 걷는 내내 보여주지 않고 길과 바다와 숲이 보이지 않게 ‘밀당’하는 느낌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몸이 된 연리지
금진다리를 알리는 이정표 따라 내려오다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몸이 된 연리지 나무를 볼 수 있다. 걷기에 바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허리춤 낮은 곳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름표라도 달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파랑길 안내판 과 리본
천천히 걸어 하금호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강구항으로 간다. 얼마를 걸었을까 울창하게 잘 자란 곰솔나무 숲이 반긴다. 정자와 쉼터가 마련돼 있다. 해파랑길 표시도 보인다. 솔숲은 평안함과 달리 한국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사자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니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인다. 소나무는 잘 자라 큰 키를 자랑하고 있어 한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준다.
금진구름다리
기분 좋게 솔 내음을 맡으며 계속 걷자 예쁘고 튼튼하게 생긴 금진구름다리가 보인다. 금진도로는 영덕읍에서 바닷가 해안을 이어주는 지방도다. 보통 여기까지 걷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금진도로로 내려가 강구항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강구항에서 금진구름다리까지 산책 삼아 많이 걷는다는데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와도 아무 문제 없이 걸을 수 있다.
금진구름다리
금진구름다리를 건너면 조금씩 내리막길로 접어든다는 느낌이 들고 평탄한 길이 쭉 이어진다. 편안한 자세로 걷는데 고래머리 형상 바위와 봉화산을 지나 널찍한 쉼터에서 블루로드 안내지도를 펴놓고 지나온 길을 되새겨 본다. 가벼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그동안 숨겨 놓았던 바다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멀리 삼사해상공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강구항 전경
어느새 목적지인 강구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왔다. 새로 만든 길을 내려와 만나는 도로를 건너서 왼쪽 강구항 방향으로 걷다가 정자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옛 강구다리에서 본 강구대교
오십천이 동해와 합류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강구(江口)라는 지명을 얻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파른 경사지에 드문드문 있는 집과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강구항 대게거리다. 강구항은 이 지역의 대표 수산물이자 명물로 통하는 영덕대게 집산지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 강구항 지나 옛 강구다리를 건너와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대게 조형물을 보니 사람들은 꽃게장은 6월에 잡은 암게로 담근 것이 맛있고, 털 많은 참게장은 가을에 담근 것이 맛있고, 대게는 겨울을 넘기고 속이 꽉 찬 대게가 제일 맛있다 한다.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를 떠올려 본다.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한 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걷는 내내 푸른 동해와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고, 태백산에서 다대포로 힘차게 달려가는 낙동정맥과 함께했다. 블루로드 A코스 출발점에서 만나는 생동감 넘치는 강구항 풍경이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따스하게 위무(慰撫)해준다. 체험이나 볼거리가 없기에 조용히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나이 든 사람들에겐 아름다운 바다의 추억을 돌려주고, 연인에겐 낭만과 기쁨을 선물하며, 아이들에겐 꿈을 키우고 바다와 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빛과 바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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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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