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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연일 창원대학교 특수교육과 외래교수·시인
얼마 전 한 매체에 실린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생전(生前) 장례식’이라는 기사를 읽고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용인즉, 임종을 앞둔 어떤 환자가 서울의 모 병원에서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생소한 ‘생전 장례식’(일본에서는 이런 장례식이 이미 자리 잡고 있지만)을 거행한 것이다. 장례식을 연 주인공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그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였는데, 그의 생각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건 무의미하니 임종 전에 지인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부고장(訃告狀)을 가까이 지내던 이들에게 보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연령, 교육수준, 건강상태, 종교의 유무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그 병원의 의사 말에 따르면 생전 장례식을 가진 그는 불과 한두 주 앞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환자였다고 한다. 즉 그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컸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전 장례식을 결행한 것이다.

장례식장은 병원 측의 배려로 병원 세미나실에 마련되었는데, 그는 평소에 입고 있었던 환자복을 벗고 그날만큼은 밝은 평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했다고 한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조문객들이 차례로 한 명씩 앞에 나와 그와 얽힌 이야기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필자는 이 생전 장례식에 크게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지인이나 가족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에 누군가가 내 장례식장에 찾아온다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인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누는 건, 아리긴 하지만 매우 뜻깊으며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족은 물론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쉽지만은 않았을 그의 생전 장례식 결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아울러 나의 임종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여건만 된다면 나 또한 꼭 그렇게 하리라는 결심을 한다. 그래서 평소 가까이 지냈던 지인들을 불러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누고, 애창곡도 한목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사람에게는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혹 여태까지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이 그 자리에 왔다면 주저 없이 다가가 그를 껴안으며 용서하는 시간도 가지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한평생을 함께 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동안 가슴에 있었으나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하리라. 내 마지막 간절한 소망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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