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1956년으로의 문경여행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사투리보존회장 등록일 2018년09월10일 18시40분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위원 문경사투리보존회장.jpeg
▲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사투리보존회장
문경시 마성면의 면지를 만들면서 문경의 1956년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화보(畵報)를 입수했다. 외어4리에 사는 정태목 선생이 기증한 약 40쪽의 ‘약진하는 문경의 편모(片貌)’라는 것이다.

이 해는 마침 탄광 기업도시인 점촌이 호서남면에서 점촌읍으로 승격하는 해였다. 이명록 문경군문화협회 회장이 발간한 것이었는데, 문경문화원이 창립되기 11년 전이었다. 그때에도 향토의 정신을 오롯이 담겠다는 분들이 있었다는 게 놀랍다.

발행인과 문경교육감(당시에는 교육자치가 시군 단위였음), 문경군수, 문경경찰서장이 쓴 서문을 보노라니 당시 국한문 혼용 시절의 어투가 정답기도 하고, 언어생활의 이중성을 보는 듯해 우리 어문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문자생활과 말 생활이 매우 다른 듯한데, 발행인의 서문은 570여 글자가 마침표 한 번 없이 이어져 특이하다.

그리고 문경군 단위 기관과 읍면 단위 기관을 실렸는데, 경찰서, 지서를 군청, 읍면사무소보다 앞에 배치해 편집한 점이 눈에 띄며, 당시 각 기관장의 사진을 실어 화보가 더욱 생동감 있고 실감 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점촌 시내 전경 사진은 정겨운 시골 마을을 연상할만하다. 당시 인구가 갓 2만을 넘었을 테니 인구가 5만으로 늘어난 지금과 비교하면 그렇기도 하겠지만, 돈달산 밑에 드문드문 시가지를 형성한 모습이 소담하기만 하다.

점촌장이 개장되고 인근 상주와 예천에서까지 장 보러 왔다는 사진 설명 속에 장 보러 온 건지, 장 구경하러 온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또 우리나라 시멘트를 공급하기 위해 지은 신기 시멘트공장의 큰 규모와 인력, 은성광업소와 봉명탄광의 모습을 실으면서 우리나라 산업에 이바지하는 역할과 규모가 매우 컸음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문경새재 관문 중 1관문 외에는 2관문, 3관문이 문루가 없어진 상태로 양쪽 성벽도 스러져 있고, 주변에 수풀이 우거진 채 홍예문만 당그란 것이 우리나라 당시의 열악한 형편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해고 격동기가 아닌 해가 없었고, 의미 없지 않는 해가 없었지만, 광복 11년, 6.25 전쟁 3년을 지난 문경의 당시 모습에서 더 넓은 세계까지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고 있다.

당시 나라에서는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회가 열렸고, 장면 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서 피격되어 경상을 입었으며,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휴전감시위원단이 한반도 철수를 결정했고, 한미우호통상조약 체결, 호주 멜버른에서 하계 올림픽 개막, 국회에서 어머니날 제정, 최초의 TV 방송국 대한방송 개국, 제2대 지방의회(시읍면 의회) 의원선거, 1950년 육군 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인 10월 1일을 국무회의에서 국군의 날로 제정했다.

또 미국 배우 멜 깁슨, 강원도지사 최문순, 성교육 강사 구성애, 가수 장현, 야구선수 박철순, 코미디언 서세원, 권투 선수 슈거 레이 레너드, 배우 유동근, 방송인 손석희, 정치인 노회찬,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가수 혜은이, 배우 이경진, 야구선수 송재박,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이 해에 태어났고, 한국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 독립운동가면서 정치인인 해공 신익희, 화가 이중섭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그런 때 당시 마성면의 면사무소와 지서, 초등학교와 양조장 등 어릴 때 보았던 모습을 화보로 보니 역사의 그리움이 더욱 간절했으며, 비록 작은 면 한 곳이지만 한 지역의 현상을 기록하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 사진 속의 인물들이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월의 덧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 경북일보 & kyongbuk.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