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저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감상> 그녀의 집을 수없이 찾아가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빈 스티로폼입니다.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기 위해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선 숱한 저녁들이 바로 첫사랑입니다. 사랑 고백을 끝내 하지 못하고 남긴 숱한 연서들이 바로 첫사랑입니다. 집뿐만이 아닌 그녀가 다니는 장소와 길들이 모두 나를 맴돌게 만드는 소용돌이였을 겁니다. 밤새 뒹굴게 만들었던 첫사랑이 너무 애틋하여 내 마음 속엔 돌멩이 하나로 들어앉은 채,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들로 자리 잡았을 겁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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