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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철학을 되돌아보자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등록일 2018년09월11일 16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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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세계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와 문화 분야는 분열과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조금도 완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격화일로에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문제를 낳고 갈등이 갈등을 생산한다. 그래서 오해는 두터워지고 이해는 옅어진다. 집단이기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自文化中心主義)가 심화되고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입각한 간주관적(間主觀的) 의사소통은 허공에 뜬 이론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국민 사이에 미국과 일본,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대학입시정책과 소득주도성장론을 둘러싼 국민경제 정책상의 논쟁, 노동문제, 여성문제,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 모두에 갈등이 있고 어느 하나 속 시원히 소통되고 타결되는 분야가 없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이며 당연히 합의할 것 같은 역사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조 단군에 대한 해석과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수준, 요서지방에서 출토된 홍산문화 내지 발해문명에 대한 평가, 신라의 삼국통일 의미, 고려시대의 국경, 조선왕조의 의의와 유교문화에 대한 진단이 학계나 연구자 사이에 통합되어 있지 않고 그 수용의 간극이 크다. 최근 고려시대의 압록강의 위치를 두고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라 요하가 압록강 또는 압록수였다는 학설이 대두되고 있으며, 윤관의 구성(九城) 가운데 공험진의 위치는 두만강 넘어 선춘령에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갑론을박하는 상태다. 특히 환단고기 등의 고대사에 관련한 서책에 대한 위서와 진서논쟁은 도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참에 원효대사가 생각난다. 석가세존 입멸 후 불교는 사유와 수행에 있어서 발달과 분리를 거듭하여, 대소승의 차별은 물론, 대승이나 소승 가운데서도 수많은 분파가 생겼고 그 학문상의 대립은 중국에까지 확대되었다. 당시 인도와 중국을 풍미하였던 유식사상에 있어서, 인도에서는 ‘유식삼십송’에 대한 십대논사(十大論師)의 이견(異見)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구 유식(舊唯識)과 신 유식(新唯識)을 비롯하여 많은 대립이 있어, 이는 중국불교계에서도 미해결의 난제(難題)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원효는 극동의 신라에 앉아 인도와 중국에 걸친 불교 철학상의 각종 분열과 대립을 명쾌하고 대국적인 이론으로 화해하고 통섭하였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화쟁철학이다. 원효는 각고의 공력으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저술하여 제가(諸家)의 상반되는 입론을 타파하여 모두 한 맛의 진리바다로 들어가게 하였다. 예를 들어 유식이론의 깊은 논의에서 인도의 호법의 설과 안혜의 설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는데, 직접 인도유학을 다녀온 현장법사와 그의 제자면서 법상종을 개창한 규기대사는 모두 호법설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원효는 호법은 좁고 정밀한 문에서 입론하였고 안혜는 넓고 포괄적인 입장에서 주장한 것이라 하여 모두 옳은 이론이라 다툴 것이 없다고 하며 두 학설을 회통하였던 것이다. 원효는 백천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일미(一味)가 되듯이, 백천의 쟁론이 진리의 바다에 융섭(融攝)된다고 보았고 또 이를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를 정치·사회문제에 적용하여 삼국이 하나나라는 차원에서 방방곡곡을 다니며 무애와 화쟁의 사상을 역설하여 통일전쟁이 남긴 백제와 고구려인의 상처를 씻어주고 모두 하나 된 나라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노력했다. 이제 어렵고 중대한 시기를 맞아, 원효 같은 인물이 나타나길 바라며 그 철학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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