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에 논두렁을 걷다가 슬쩍
오리알 둥지를 스쳤을 뿐인데 알을 품던 어미오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만지기만 하면 멀쩡했던 토종 오이 꼭지들이 짓물러 떨어지고
참외 배꼽이 새카맣게 썩어 들어갔다

독사를 잡아먹은 암소가 유산을 하고
노랗게 곪은 젖을 뚝뚝 흘리며 돌아다녔고
뒤꼍 장독대 새로 담근 장이 푹푹 썩어 갔다

멀리서 오다 말고 / 주춤거리는 신생을 가로막고 서로 붙어먹는
싸늘한 상극(相剋)들, 부엌칼이 날아가 꽂힌 마당에
검은 피가 흘렀고 잡초가 우북이 돋아났다

한쪽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새가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눈먼 고양이가 무덤 위에서 날카롭게 울자
집 나간 개가 붉은 명정(銘旌)을 물고 돌아왔다

반쯤 부화된 오리알 속에서 구더기들이 쏟아졌고
나는 고통 없이 내 살이 검게 썩어 들어가는 걸 본다




<감상> 어떤 사람은 저렇게 잘 풀리고 자신은 하는 일마다 부정 타니 속을 많이 끓일 수밖에 없지요. 큰일을 앞두고 부정 탄다고 금기시하는 일들이 좀 많았나요. 새끼 강아지가 귀엽다고 만졌다가 어미가 그 새끼를 물어다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저도 부정 탄 경험에 해당하지요. 잘 나가는 사람들은 신생의 경지에, 늘 안 풀리는 자신은 상극의 위치에 놓여있는 것 같지요. 잘 나간다고 너무 어깨에 힘주지 마세요. 전체적으로 보면 고통 없이 살이 썩어들어 가듯, 죽음을 향해 가는 부정의 바퀴는 누구도 막지 못하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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