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고민 잊게 하는 솔향 솔솔 '솔바람길'

솔바람길.
안개 끼는 날이 많은 청도의 사계는 색의 향연, 특히 보색의 잔치이다. 봄에 찾은 청도는 벚꽃과 복사꽃 그리고 연한 감잎이 연출하는 색채 대비 속에 어지럼증을 일어나고, 여름은 짙어진 녹색의 푸르름에 눈이 시릴 지경이고, 가을은 곳곳에 깔린 진녹색 양탄자와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 뒤로 펼쳐진 초록의 대지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을 보여준다. 누가 뭐래도 운문사는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푸르름 가득한 여름날은 또 다른 느낌이다. 어디에서 들어오든 길가의 여러 여름꽃이 나란히 도열해 반겨주기 때문이다. 110년 만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시간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한껏 누그러진 날 호거산 자락 청정도량 운문사가 있는‘솔바람길‘을 따라 걸어 운문사 만세루 마루에 앉아 처진 소나무를 보면서 잠시 쉬었다가 경내를 천천히 둘러 본 뒤 북대암에 올랐다 되돌아오는 짧지만, 살짝 땀을 흘리며 갔다 오는 기억에 남는 길이다.
솔바람길.
절 매표소는 절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절의 일주문이 아니었다.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찬 솔숲길이 반긴다. 노송들이 시원스레 뻗어 올라 소나무 터널을 이룬 솔밭 사이를 느리게 걸으며 들어간다. 소나무 숲을 걷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다. 물소리 가득한 운문천이 함께 흘러서일까 아니면 세상을 초탈한 비구니들이 공부하는 곳이어서 그런 것일까. 수백 년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솔숲은 앉아 쉬는 곳이 휴식처다. 길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다. 게다가 사람 편하자고 콘크리트, 아스팔트를 깔고 나면 그 맛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무릎이며 발목에 무리가 오게 마련이다. 다행히 운문사 솔숲길은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좋은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솔바람길 나무 이정표에 많이 보고 들었던 법구경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솔바람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청정한 솔바람 소리에 실려 오는 낮은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법열(法悅)에 든 스님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냇물 소리든, 풀벌레 소리든, 바람 소리든, 운문사 비구니의 염불 소리든 굵은 줄기마다 붉은빛 머금은 소나무들은 하늘로 치솟고 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반겨준다. 쭉쭉 뻗은 금강송도 좋지만 아무래도 소나무는 굽고 틀어진 것이 제격이지 싶다. 게다가 그리 무거울 것도 없는 가지가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땅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못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솔바람길 두 개의 길.
운문사 솔밭은 서산 안면도 해송밭, 경주 남산 삼릉계 솔밭, 풍기 소수서원 진입로 솔밭 못지않게 장관이다. 운문(雲門), 말 그대로 운문사는 구름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듯 안개가 짙게 내려 앉는 모습에 소나무들은 줄기에 습기를 머금어 더욱 불그스레 피어오를 때 운문사 소나무들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지 모른다. 운문사 노송들은 그 밑동이 마치 대검에 찍히고 도끼로 파인 듯한 큰 상처의 흠집을 갖고 있다. 일제 말기 대동아 전쟁 때 송진을 공출하기 위해 받아낸 자국이다. 그럼에도 아픔의 상처를 드러내놓고도 당당한 자태로 늠름히 사철 푸르게 살아있지 않는가. 누구 하나 눈길 주지 동안에도 도톰하게 살이 올라 그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하트모양(♡)’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자행된 일제강점기의 수탈 흔적들은 언제 봐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운문사 입구까지 연결된 길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모녀의 모습도, 아이를 번쩍 안고 걷는 아버지의 모습도 솔숲길만큼 예뻐 보인다. 빨리 걸으면 절까지 15분이면 닿겠지만, 이 길은 느릿느릿 걷는 게 제맛이다. 그윽하게 번지는 솔향과 청아한 새들의 지저귐 소리 덕분인지 길을 걷는 사람들 표정이 맑다.

길 오른쪽으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올 즈음이면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절 입구는 2층으로 된 호거산 운문사 범종루 앞에 닿게 된다. 구름으로 들어가는 산문이라는 운문사(雲門寺)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사미니계를 받은 250여 명의 비구니 학인 스님이 항시 있다는 것, 장엄한 새벽예불, 운문사 솔밭,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이 절에서 썼다는 사실을 운문사의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으로 꼽았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자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이다. 그래서인지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답게 깔끔하면서도 단아하다. 범종루를 지나면 수령이 400년 넘었다는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사방으로 나뭇가지가 뻗었고 곳곳에 가지를 지탱하기 위한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매년 봄이면 뿌리가 땅에 잘 밀착될 수 있도록 열두 말 가까운 막걸리를 부어준다고 한다. 둥글고 낮게 가지를 드리웠으나 여전히 푸르른 것이 4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며 운문사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운문사 경내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처진 소나무 옆으로 보이는 만세루도 크지만 대웅보전 규모 역시 엄청나다.
만세루에서 바라본 북대암.
만세루에서 바라보는 북쪽 산자락에 자리한 북대암이 제비집처럼 보인다. 잘 배치된 건물과 터가 정갈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둘이다. 만세루 너머에도 있고 앞에도 있다. 만세루 너머 대웅전은 새로 지은 대웅보전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아담하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웅보전을 신축하면서 이미 지어진 대웅전을 극락전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지만, 기존의 대웅전이 보물 제385호로 지정되어 변경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대웅전 법당 안에는 극락으로 가는 배를 상징하는 반야용선이 천정에 표현되어 있다. 줄을 잡고 오르는 ‘악착동자’라 불리는 작은 동자상의 익살스러운 모습은 반드시 보고 올 일이다. 극락전(대웅전) 앞에는 한 쌍의 해태상이 있는데 오른편 것은 새끼를 안고 있어 암컷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앞에 석등과 석탑이 한 쌍씩 나란히 있다. 아마도 쌍탑의 배치와 맞춘다고 새것을 하나 더 세웠는데 새로 새운 것이 어색하지 않게 보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왠지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 본래 절 마당이 아무리 커도 석등은 하나만 모시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문율이 아니라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에 보면 “가난한 자가 참된 마음으로 바친 하나의 등은 부자가 바친 만 개의 등보다도 존대한 공덕이 있다”라는 구절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발길을 돌려 작압전에 있는 사천왕 석주를 보러 간다. 둥글둥글 순한 얼굴의 사천왕상은 귀여운 모습이다. 절 안쪽으로는 강학의 공간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다. 만세루 마루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몇 해 전에 시절인연이 되어 보았던 새벽예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50여 명의 비구니들이 법당 안에 정연히 늘어서서 의식과 함께 행하는 새벽예불은 무반주 합창이다. 절을 올리며 합창하는 자세가 반복되기 때문에 엎드려 고개 숙여 소리를 낼 때는 소리가 낮게 내려앉고, 다시 합창의 자세로 돌아오면 고음(高音)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합창단과 예불의식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체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끼 낀 북대암 가는 길.
경내에서 나오면 들어올 때 보았던 돌담길 담장따라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을 상상하며 포장도로 따라 솔바람길 따라 걷다가 내원암 표지석을 지나면 이내 북대암 가는 길을 만난다. 북대암은 운문산에 처음(서기 557년)세워진 암자이다. 구불구불 좌우로 꺾어진 길 따라 올라가는 것이 조금 힘들다는 느낌을 주지만 콘크리트 포장으로 인해 고졸(古拙)한 맛을 잃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걷는 사람이 안 보인다. 중간쯤 새로 조성한 ‘극락교’다리 한쪽 기둥에 ‘나를 비우면 모두가 편안하리라’라는 글귀를 보며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비우거나 가는 것도 빠른 모양이다.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도 비울까 말까인데 차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면서 어떻게 자신을 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북대암에서 바라본 운문사.
북대암에서 내려다본 운문사의 기막힌 풍광은 짧지만 힘들게 걸어 올라간 노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름 내내 더위에 지치고 눅눅해진 마음을 햇살에 널어 말리다 오기 좋은 길이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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