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고민 잊게 하는 솔향 솔솔 '솔바람길'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청정한 솔바람 소리에 실려 오는 낮은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법열(法悅)에 든 스님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냇물 소리든, 풀벌레 소리든, 바람 소리든, 운문사 비구니의 염불 소리든 굵은 줄기마다 붉은빛 머금은 소나무들은 하늘로 치솟고 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반겨준다. 쭉쭉 뻗은 금강송도 좋지만 아무래도 소나무는 굽고 틀어진 것이 제격이지 싶다. 게다가 그리 무거울 것도 없는 가지가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땅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못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길 오른쪽으로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올 즈음이면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절 입구는 2층으로 된 호거산 운문사 범종루 앞에 닿게 된다. 구름으로 들어가는 산문이라는 운문사(雲門寺)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 사미니계를 받은 250여 명의 비구니 학인 스님이 항시 있다는 것, 장엄한 새벽예불, 운문사 솔밭,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이 절에서 썼다는 사실을 운문사의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으로 꼽았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자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이다. 그래서인지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답게 깔끔하면서도 단아하다. 범종루를 지나면 수령이 400년 넘었다는 천연기념물 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사방으로 나뭇가지가 뻗었고 곳곳에 가지를 지탱하기 위한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매년 봄이면 뿌리가 땅에 잘 밀착될 수 있도록 열두 말 가까운 막걸리를 부어준다고 한다. 둥글고 낮게 가지를 드리웠으나 여전히 푸르른 것이 40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며 운문사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