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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이 낳은 충신, 호명면 원곡리 장화식 대감

제일은행권 유통금지 고시…화폐 가치 하락 막아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9월17일 17시47분  
▲ 장화식 대감
시대는 다르지만,예천군에는 많은 충신이 있었다. 알려진 인물과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나뉜다.

조선 시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려 이순신을 구한 약포정탁 대감이 예천을 대표하는 충신의 상징이지만 구한 말 알려지지 않은 충신인 예천군 호명면 원곡리 출신 한성부판윤을 지낸 장화식(1853~ 1938)대감을 소개한다.

지금 종편(tvn)에서 인기를 끌며 방송 중인 이병헌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에서 일본의 제일은행권 국내유통금지와 통신원 총판 때 통신권 침탈을 온몸으로 끝까지 저항하며 일본의 국권 침탈에 맞서는 이들의 활약이 방영 중이다.

이 장면을 볼 때 대한제국의 자존심을 지킨 장화식 대감이 떠오른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일본군에 총을 쏘는 등의 활약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지방관인 한성판윤의 이름으로 일본 제일은행권의 유통금지를 고시해 한국 화폐가치의 하락과 주권 침탈을 막았다. 또 드라마처럼 한성판윤 재임 시 그는 일본의 다양한 방법으로 국권 침탈행위에 목숨 걸고 나선 관료다.

고종황제에게 충성하고 국권수호와 침탈에 강하게 저항한 장 대감은 당시 일본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외국인 주택과 토지매입이 증가 할 시기 주택 구매문제와 무리한 행정소송, 고도제한, 일본의 불법 전화 시설, 일제의 통신권 침탈 등을 막으며 국권을 지켰다.

1901년 11월 1일 퇴계 이황 선생의 신주가 분실 (도산묘변·陶山廟變)돼 영남 유림이 충격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장 대감은 대한제국의 자주정신이 되는 퇴계 이황 선생의 신주를 고종황제에게 주청해 새로 모시게 했다.

장 대감은 고종황제가 인정한 유학자다. 그는 유학의 바탕 위에서 생각하고 했다.

가학을 이어받고 사서삼경과 제자 백과 서를 섭렵했다. 늙도록 몸에 지닌 것은 주자의 글과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었다. 장대감의 일념(一念)은 충효 사상이다. 충은 임금과 나라에 충성하고 효는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평범한 진리를 잘 지켜서 장 대감은 언제나 군부(君父)를 하나의 충효로 섬겼다.

임금과 부모는 하나로 고종황제를 어버이처럼 모시고 충성을 한 것이다.

특히 을사늑약과 통신권이 강탈될 때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고 대항하다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 자결한 민영환 주미 전권대사와는 평소 자주 만나 나랏일을 걱정하며 의지한 각별한 사이다.

민 대사가 자결한 마루에서 대나무 (혈죽·血竹)가 솟아올라 많은 이들은 선생은 넋을 기리고 그의 충절에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눈물을 흘린 이가 넘쳐 났다고 한다.

장 대감은 민 대사를 기리는 ‘만 민충정공 영환’이라는 시를 지어 서상(西廂)에 고이 간직했다.

장대감의 아들이 최초의 군악대를 창설하고 지휘하고 의병봉기에 앞장선 장봉환 선생이다.

김봉균 선생이 쓴 ‘장화식·장봉환 부자의 충효의 일생’이라는 책에는 이들의 업적이 잘 기록돼 있다.

권창용 문화원장은 “조선 초기 인구비례 가장 많은 장원급제자가 나온 곳이 예천으로 예로부터 예천의 인재들은 가학과 성리학을 배우며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하는 관료들이 넘쳐났다”고 했다.

또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아직도 많은 곳이 예천으로 문화원에서 더 발굴과 연구해 예천의 훌륭한 선현들의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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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기자

    • 이상만 기자
  • 경북도청, 경북지방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