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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어느 시인이 봄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움튼다고 읊었다. 한데 가을은 그게 아니다. 일순간 돌변하듯 성큼 곁에 다가온다. 기나긴 열대야가 물러나면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마지막 과일을 익게 하듯이 잔광은 강렬하지만 말이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의 폭스(톰 행크스 분)는 말한다. 뉴욕의 가을은 사랑스럽다고. 하늘과 구름이 높아 산책하기 멋진 이맘때 떠오르는 슬픔이 있다. 애견 미남이의 애틋한 작별이다. 침실을 함께하던 인연이라 충격은 깊었다. 한 해가 흘렀고 아련한 흔적만 남았다. 유명인의 기발한 묘비명도 많으나 녀석은 ‘커다란 행복을 선사한 생명체’였다.

로마사는 곧 서양사라고 일컫는다. 오늘날 유럽 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는 탓이다. 법의 민족답게 법치로 국가를 다스린 로마인 역사서를 대하면, 이천 년 전의 합리적 통치술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중해를 ‘우리 바다’라고 부를 정도로 유럽과 중동과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의 지혜였다.

고대 로마의 도시 주민은 ‘인술라’라 칭하는 대형 아파트 건물에 살았다. 거개가 5∼6층으로 지어진 건조물 1층은 주로 상점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주상 복합이라고나 할까. 서민들 생필품을 파는 전방이 많았다. 물론 집세를 납부했으나 수도 로마는 다른 도시의 열 배나 됐다고 한다.

인술라는 외부로 설치된 목조 계단을 통해서 위층을 올랐다. 크고 비싼 방은 대부분 아래층에 있었다. 기원후 4세기 무렵 로마엔 사만 사천 채나 건립됐으나, 거주자가 조밀하여 악명이 소문났다고 전한다.

천여 년 후의 마키아벨리도 인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항으로 설파하였듯이, 로마 제국 황제의 삼대 책무는 안보와 식량과 내정(공공사업)이었다. 그중에 식량은 일자리를 뜻한다. 광활한 영토를 지키는 로마군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그리고 로마인의 제일인자로서 시민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펼쳤다.

도로·상수도·교육·의료·오락장 등등 일상과 관련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했다. 내가 로마사를 탐독하면서 의아했던 대목이 있다. 제국의 수많은 민생 방안 중에서 수만 채의 인술라에 들어선 자영업 대책은 발견치 못했다. 이유는 모른다.

자장면은 한국인이 즐기는 특식의 하나이다. 언젠가 서울의 양화대교 밑에서 아내와 먹었던 추억도 그립다. 호기심으로 육중한 기둥에 소개된 번호로 연락하니 문자 그대로 총알 같이 배달이 왔다.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 동네에도 중국집이 있다. 주인장이 주방 일을 직접 하는 식당으로 개업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인근의 주민들 위주로 고객도 붐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 하얀 벽에 눈높이로 액자가 붙었다. 가장 크고 고급스런 액틀엔 한 편의 시가 눈길을 끈다. 바로 ‘상인 일기’다.

장사하는 분들의 직업 정신 내지는 다짐 비슷한 결기가 물씬한 글귀다. 나는 들를 때마다 잠언을 마주하듯 경건한 맘으로 읽는다.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 그러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

올해 상반기 음식점 및 주점업 매출이 대폭 하락했다는 통계청 조사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자영업자 숫자가 늘어나고 고령화한다. 지난해 창업한 오륙십 대 가운데 65%가 휴폐업했다. 실버들의 빚더미가 어른댄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시라 격려를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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