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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흔히 도시재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스페인 동북부에 위치한 빌바오시의 경우가 자주 언급되곤 한다. 특히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 새롭게 탈바꿈 한 성공스토리는 현재 우리 지역이 처한 상황과 유사해 더더욱 우리에겐 벤치마킹 대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빌바오시의 성공비결에 관해 얘기할 때 큰 것에 주로 집중한 나머지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도 중요한 사실들을 다소 간과한 면이 없지 않다. 이는 도시재생에 관한 정책을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빌바오시의 도시재생 성공비결을 구겐하임미술관 유치 때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97년 개관 이후 연간 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으면서 ‘구겐하임 효과’로 불릴 정도로 지역경제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니 그렇게 볼만도 하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았을 뿐 숲을 보진 못한 경우와 같다. 사실 구겐하임미술관이 빌바오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이라기 보단 오히려 다른 도시재생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들이 상호 조화롭게 동시에 추진되었기에 성공 가능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 차량 증가에 따른 주민통행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주차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가 하면, 노년층과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 곳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주민생활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책들이 민관협력으로 다방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심 강변은 관광객이 아닌 주민들이 편히 걸을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고, 도시 곳곳의 오래된 건물은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대에 걸맞게 용도변경 되면서 헐리기보다는 보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리고 일방적 통제보다는 주민동의 하에 세금과 요금제로 차량으로 인한 도심 혼잡 문제를 해소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경제적 가치를 앞세운 관광객 유치만을 위한 도시재생이 아니라 그곳에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우선 생각하는 올바른 정책 방향이 있었기에 지금의 빌바오시가 가능했던 것이다. 마을 길을 아름답게 한다며 애써 그려 놓은 마을 벽화를 잦은 외부인의 방문으로 불편함을 느낀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지우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 수질오염과 모래유실로 오래전부터 낙후돼 온 송도동 바닷가 일대와 구도심 일원인 신흥동이 2018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되었다. 작년, 구도심인 중앙동 일원과 지진피해 지역인 흥해읍이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선정된 데 이어 또 다시 선정되면서 우리 지역에선 향후 도시 전체에 대한 재생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시는 해당 지역 도시재생 계획을 발표하면서 ‘문화예술 허브’니 ‘청년창업 허브’와 같은 문화예술 그리고 청년층을 겨냥한 굵직한 사업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도시재생과 관련해 으레 등장하는 수사적 표현들일 뿐 실제적이고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가령, 옛 중앙초 부지를 ‘문화예술허브’로 조성한다면서 송도지역 옛 수협창고자리 또한 ‘복합 문화예술 거점’으로 한다든가 혹은 중앙로 일대를 예술문화 창업로로 만들겠다는 계획 등은 도시의 다양성을 무시한 너무나 문화 일변도의 ‘레토릭’에 충실한 계획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오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전체적인 정책 방향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시가 발표한 청사진을 그냥 단순히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화를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거리’ 조성도 필요하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청년창업 허브’를 구축하는 것 역시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도시미관을 위해 조형물 설치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심을 가르는 강에는 오염되지 않은 강물이 흘러야 하고 도심 곳곳에서 만나는 인공 조형물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변한 골목길은 주민들의 안전한 출퇴근 내지는 등하굣길이 되어야 하고 도심을 이루는 가로와 상가들이 질서정연해져야 제대로 된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도시재생의 참된 목적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우선적으로 높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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