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털에 묻은 건 먹이 절반,
공기가 절반
화선지에 먹을 묻히는 건 차라리
공기에 가깝다
이 공기가 지나가면 먹 사이로 흰빛이 생긴다
먹물 속에서 공기가 숨을 쉬는 것이다
뻑뻑한 먹물이 영영 굳지 않도록
풍경을 일렁이게 하는

비백(飛白)*

검은 등 위로 돋아난 해오라기의 흰 깃과 같은 것
그것을 검정의 감정이라고 할까

밤은 구름으로 하여 여럿의 감정을 갖는다
먹이 단색이어도 좋은 이유이겠다

* 飛白 : 먹으로 채워지지 않는 흰 부분을 남기며 긋는 운필법.




<감상> 비백(飛白)은 마치 비로 쓴 것처럼 붓끝이 잘게 갈라져서 씌어지기 때문에 필세가 비동(飛動)한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세밀한 관찰력이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시인의 눈은 대단히 밝습니다. 먹물 속에서 공기가 숨을 쉬기 때문에 흰빛이 생깁니다. 숨을 쉬는 곳에는 어디든지 흰빛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그윽한 그늘에는 흰 그늘이, 저수지의 얼음에는 흰 숨구멍이, 검은 해오라기의 등에는 흰 깃이 있는 것은 바로 검정이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정이 모든 색의 근원이기에 검정의 대명사인 밤은 구름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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