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대피소 생활 10개월째
"가족들 찾아와봤자 쉴 곳 없어···바닥 찬 기운에 누워있기 고되"

20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전경
“추석 같은 소리 하지 마소. 텐트에 누워있는 노인네들 안보이는교”

20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지진 이재민 손모(68·여)씨는 이번 추석에 대한 큰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 거주 중인 30여 명의 이재민들 또한 지난 설날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실내체육관에서 10개월이 넘도록 생활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다.

이재민 중 상당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소에 마련된 1평 남짓한 텐트에서 추석을 보낼 예정이다.

아픈 허리 때문에 텐트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A(72)씨는 “지난 설 연휴에는 이재민들끼리 모여 서로 위로하고 조금 더 나아진 상황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그럴 힘도, 의지도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이어 “유독 힘겨웠던 여름을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하다”며 “이제는 슬슬 바닥에서 찬 기운이 돌아 누워있기 힘이 들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만날 가족과 친척들을 위한 추석 음식과 선물세트 등을 준비하며 연휴를 즐길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재민들은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을 볼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얼굴만이라도 보고 가겠다는 아들과 딸의 전화에 애써 ‘괜찮다. 길도 막히는데 편히 쉬는 것이 낫다’고 대답하는 이재민도 보였다.

서울에서 가정을 꾸린 아들을 둔 B(68·여)씨는 “가족들이 찾아와도 같이 쉴 곳도 없다. 어린 손주들에게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다”고 언성을 높였다.

한편, 체육관으로 가족을 부를 수 없던 김 모(69·여)씨는 흥해 인근의 펜션에서 가족들과 연휴를 보낼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 설날에는 홀로 텐트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며 “가족들이 조금씩 음식을 준비해와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고 1년 만에 고등학생이 된 손녀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자동차로 5분 가량 거리에 위치한 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임시 주거 단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재민들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점심 시간 무렵인데도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고 들리는 소리라곤 외지인을 보고 경계하는 애완견들이 짖는 소리뿐이었다.

이주단지에 사는 C(83)할아버지는 “혼자 살게 된 지 10년이 지났다”며 “추석이라고 특별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절보다 2년 안에 집을 구해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점이 큰 걱정거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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