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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환 전 의성공고 교장
벼의 알갱이가 생기는 9월경에는 새떼가 극성이다. 잠시만 그대로 두면 새떼가 앉았던 볏논의 한두 평 정도는 쭉정농사가 된다. 물오른 벼알갱이의 흰물을 쭉쭉 빨아 먹는다. 까먹는 것이 아니다. 새보기(새 쫓아내기)에는 온 가족이 동원된다. 볏논의 한구석에 원두막 같은 새막을 세워 후여! 후여! 하면서 새떼를 쫓아내면서 새보기를 철저히 해야 한다. 온 들녘에 논마다 각각 다른 모양의 새막이 들어선다.

볏논바닥에 대나무를 줄지어 꽂아 세우고 새끼줄을 쳐서 깡통, 요롱, 헝겊조각 등을 중간 중간에 매달고 그 새끼줄의 한끝을 새막 기둥에 묶아 두고 새떼가 날아들면 재빠르게 그 줄을 당겨 흔들어 쫓아내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앙철통을 퉁퉁치고, 후여! 후여! 하면서 새보기가 요란스럽다.

형형색색의 허수아비도 들어선다. 가을바람에 일렁거리며 누렇게 익어가는 볏논의 가을 풍경을 되새겨 본다.

새보기에는 딱총이라는 것도 있다. 볏짚을 세 가닥으로 머리 땋듯이 엮어 한 발(약 1.5m) 정도의 길이로 머리 부분은 굵게(잡기에 알맞게) 끝 부분은 가늘어지게 만들고 끝에는 닥나무껍질로 만든 40cm 정도의 가느다란 끈을 만들어 단다. 이 딱총의 머리 부분을 잡고 빠르게 돌리다가 획 접어 세게 뿌리면 땅! 하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난다. 새를 쭟아 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10월 중순이 넘어 벼가 익으면 벼 베기를 한다. 이모작 마른 논에서 베어낸 벼는 일주일 정도 논바닥에 그냥 널어 말린 후에 걷어 깻단으로 묶어서 집 마당으로 실어 들인 후 논바닥이 얼기 전에 논보리를 서둘러 심는다.

일모작 무논에서 벼 베기를 할 때에는 벼를 베어 묶는 끈부터 만들어야 한다. 한 줌 정도(두 포기)의 벼를 베어서 벼 이삭 부분을 돌려 접어 연결이 되게 하여 뿌리 쪽 부분을 두 갈래로 갈라 펴면 70cm 정도의 벼끈이 된다. 그 벼 줄기 끈을 논바닥에 펴놓고 낫으로 벤 벼를 알맞게 모아 묶는다. 지름이 20cm 정도가 되어서 두 손으로 들기 알맞은 볏단이 된다. 이것을 ‘무댕기 단’이라고 한다.

벼를 이렇게 해서 모두 베면 논둑으로 옮겨 A자 모양으로 벼 이삭이 위로 가도록 길게 이어 세운다. 이것을 ‘발가리’(낟가리)라고 한다. 베어낸 생벼를 말리는 방법이다. 한 달이 넘게 말리는 중간기간에 볏단을 차례로 반 바퀴씩 돌려 고쳐 세워서 속 부분도 고르게 마르도록 한다. 벼가 모두 마르면 집 마당에 옮겨서 타작을 한다. 볏단을 집으로 실어 들일 때에는 대개 소를 이용한다. 소 등에 새끼줄로 엮어 만든 옹기를 얹고 그 속에 마른 볏단을 실어 옮긴다.

집 마당에 옮겨온 잘 마른 무댕기단은 타작마당에서 깻단으로 새로 묶어서 탈곡기로 타작을 한다. 탈곡기 발판을 발로 와롱 와롱 밟아서 철사날이 달린 바퀴가 힘차게 돌아가게 해서 벼의 깻단을 한 단씩 갖다 대면 벼 이삭이 떨어져 나온다. 이렇게 이삭을 털어낸 빈 짚단은 마당 가장자리에 쌓아 짚단가리를 해서 빗물이 스며 들지 않게 한다.

볏짚은 겨울 동안에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삼고 멍석을 만들고 짚 소쿠리를 만들고 이엉을 엮어 초가집 지붕을 이는(덥는) 등 쓰임새가 많다. 또 소먹이로 쓰고 외양간 바닥에 깔아주어 소가 밟고 눕게 하고 며칠이 지나 소의 분뇨로 축축해지면 차례로 긁어내어 퇴비장에 쌓아 두면 겨울 동안에 뜨끈하게 열이 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잘 썩어서 품질 좋은 퇴비가 된다.

타작을 마친 벼는 짚 가마니에 담지만 많으면 섬에 담고 더 많으면 마당에 만든 두지(뒤주)에 담는다. 나락 두지는 타작을 마친 마당에 짚 깻단을 깔고 그 위에 둥근 멍석을 깔고 그 멍석 둘레에 짚을 엮어 만든 거적을 둥글게 세운다. 짚 거적 바깥 둘레에는 새끼줄로 묶어서 큰 원통형 공간을 만들고 타작한 벼를 짚 소쿠리로 담아 퍼 넣는다. 10~20섬의 벼를 담고 그 위는 짚이엉을 덮어 지붕을 만들어 빗물이 못 들어가게 한다.

이렇게 수확한 벼는 보관하는 동안에 쥐가 또 파먹는다. 마당에 만들어 벼를 담아놓은 두지를 뚫고 들어가 벼를 까먹는다. 쥐는 또 곡간의 흙벽을 뚫고 들어와서 벼 가마니를 뚫어 벼알을 하나하나 까먹고 등겨를 수북이 쌓아둔다. 그래서 농가에는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가 필수적이다.

이런 힘든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쌀이 생산되고, 쌀밥 한 그릇이 된다고 생각하면 쌀이 얼마나 귀중한 재물(財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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