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감상> 봉화군 석포면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어요. 그런데 고요도 세평이라는 걸 느끼려면 소리를 눈으로 잘 들어야 해요. 귀보다도 눈은 자연이 내는 소리를 담을 수 있고 그 소리들 사이에 고요(침묵)을 가져다 놓을 수 있어요.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거죠. 자연의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니 그 속에 고요가 끼어들 수 있고, 고요는 윤곽이 없으므로 하늘 세 평과 꽃밭 세 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거죠.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