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미국 대선에선 대통령 재선을 노리는 연방파의 존 애덤스와 공화파의 제퍼슨이 격돌했다. 선거 결과는 제퍼슨의 승리로 애덤스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연방파는 공화파에 정권을 이양하면서 사법부만이라도 자기들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 정권을 이양할 때까지 몇 개월의 과도기를 틈타 16명의 순회판사와 42명의 치안판사를 무더기로 임명했다.

재판관에 임명되면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법이 정한 임기가 보장된다는 점을 이용, 사법부만이라도 연방파 사람을 심어 두어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시도였다. 그런데 급하게 수십 명의 판사를 한꺼번에 임명하다 보니 행정절차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컬럼비아 특별구 치안판사로 임명된 윌리엄 마버리를 비롯, 3명의 판사 지명자들이 애덤스가 퇴임하는 날까지도 임명장을 전달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버리는 새 대통령 제퍼슨 내각의 국무장관인 제임스 매디슨에게 전임 대통령이 서명한 임명장을 교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마버리는 연방대법원에 국무장관에게 임명장 교부를 명령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마버리는 대통령 퇴임 직전 애덤스가 임명한 대법원장 존 마셜이 코드가 비슷한 자기에게 승소 판결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마셜 대법원장은 죽은 권력과 살아있는 권력의 어느 편을 들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이런 막다른 상황에서 대법관 만장일치로 나온 판결은 사건 관계자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충격이었다. 마버리에게 임명장이 수여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밝히고 나서 헌법에 따르면 정작 그러한 안건을 심의할 권한이 연방대법원에는 없다는 역설적 결론이었다. 솔로몬이 울고 갈 명판이라고 칭송받은 마셜 대법원장의 지혜로 미국 사법권 독립의 기초가 단단히 다져졌던 것이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부 질책에 대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맞장구 친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해 “대법원장 맞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 대법원장에겐 ‘마셜의 지혜’가 없는 것이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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