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진 황금빛 볏단들이
가을 논 위에 서 있다
나는 피곤에 지친 어머니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황혼의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주름진 아름다운 얼굴
추수 때의 만월은
우뚝 솟은 나무 위에 걸리고
땅거미 내려앉아 먼 산은
우리의 마음을 에둘러
그 어떤 조각상도 이보다 고요한 침묵일 수 없다
어깨에 위대한 피곤을 진, 그대들이여
널리 펼쳐진
가을 논밭에서 고개를 숙인 채 고요한 침묵을
깊게 생각하라, 고요한 침묵, 역사 또한
발아래 흘러가는 작은 강에 불과하니
그대들이여, 그곳에 서서
인류의 사상이 되어라





<감상> 중국 시인도 논의 볏단이나, 밭의 깻단이 서있는 걸 보면서 노동에 지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게다. 농사일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었다. 넓은 들판에 서 있던 곡식이 떠나듯, 어머니도 그렇게 떠났다. 수많은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먼 산으로 앉아 들판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삶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을 때, 가을 논밭에 서 보라. 대지의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역사도 한낱 작은 강에 불과하니, 어머니의 손길이 거쳐 간 대지가 바로 인류의 거대한 사상이 아닌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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