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두른 '병산'의 절경과 함께 느릿느릿 즐기는 여유

병산서원 전경
이른 아침 안동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지나 도착한 병산서원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따금 굴뚝 연기와 바스락대며 사위가 깨어나는 기척 외에는 인적도 뜸했다. 오래전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걸어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방문객을 위한 시설들이 새로 세워지는 등 주변 풍경이 많이 변했다. 병산서원에서 출발해 낙동강변 하회마을길을 따라 걷다 화산을 지나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부용대에 올랐다 다시 하회마을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하회마을 풍경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지나면 한국 건축사의 백미(白眉), 병산서원이 눈에 들어온다. 본래 ‘풍악서당’이라 하여 풍산읍에 위치했던 이 서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선조 5년(1572년) 후학 양성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화산을 등지고 낙동강이 감도는 바위 벼랑을 마주 보며 소나무의 짙푸름이 조화를 이루는 절묘한 경치와 뛰어난 건축물로 유명하다.
안동선비길-하회마을 담장
특히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해서 ‘병산(屛山)’이라 불린다. 병산서원은 풍산 류씨 집안의 사학이었고, 후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된 후로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안동선비길-만대루 모습
병산서원에 도착해 만대루에 오르는 순간 시공간을 잊은 채 하염없이 앞만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 몸은 만대루가 아닌 우주의 넓은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배롱나무와 만대루
온몸의 세포가 마당에 핀 배롱나무처럼 강과 산을 향해 사방이 열린 건물이다. 조선 건국 후 최대 위기였던 임진왜란을 겪으며 격랑(激浪)의 난세를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으로 현명하게 헤쳐 온 서애(西厓) 유성룡이 정계 은퇴 후 낙향, 낙동강 흐르는 화산을 병풍처럼 드리운 이곳에 후학들을 위해 누를 세웠다. 그는 하회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강 건너 산자락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의 교훈을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병산서원은 성리학 전성기에 학문과 현실 참여를 동시에 이룬 유성룡의 기개와 포부, 후손들에 대한 서원(誓願)이 고루 어린 곳이기도 하다.
만대루 내부 모습
만대루 내부 모습
건축학자 승효상씨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병산서원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축의 특징을 알려주고 싶을 때, 그가 시간만 있다면 나는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으로 안내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거의 반드시 그들은 이 놀라운 공간과의 조우로 깊은 사유에 들어간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황이 명종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아니하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시대의 부름에 응해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그들이 몸담았던 공간에서도 분위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황의 도산서원은 꼬불꼬불 돌아 들어간 산중에 자리 잡고 있어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에 비해 병산서원은 비록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해자(垓子)를 둘러치긴 했지만 모래벌에 당당히 나선 헌헌장부의 기상을 지녔다. 만대루에 서서 큰소리로 글을 읽으면 마주 선 화산이 절벽 끝으로 감아 올려 하늘에 계신 성현께 이을 듯하고, 시를 지어 낭랑한 목소리로 읊으면 낙동강 흰 물새가 이를 물어 온 세상에 전할 것 같다.

우리 건축은 무릇 그곳에 사는 사람의 것이다. 밖에서 보는 자의 즐거운 시선을 위한 것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건강과 향유를 위해 지어졌다. 안에서 하루라도 지낸다면 서원이 지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
입교당 마루에 앉아서 만대루를 보면 만대루의 비워진 공간이, 풍경화에 걸린 벽임을 실감할 수 있다. 만대루가 병산서원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옆으로 기다랗게 지어진 연유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건축 문화재를 일 년에 단 며칠이라도 개방해 당대에 그렇게 쓰였던 것처럼 그곳에 기거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건물은 사람의 숨결을 먹고 산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대루와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가짐을 일깨워준다는 선비의 꽃이다. 더운 여름날 지친 푸름 속에서 도드라진 진분홍 빛깔로 활력을 돋아주는 꽃나무다. 끝없는 채움의 강박을 한여름 매미 허물처럼 벗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눈을 감아도 환하게 새어드는 빛이 황홀한 시간이다. 건물 난간에 기대어 진교당과 동재의 모습을 감상한다. 복례문 너머로 사람들 인기척이 들려온다.
달팽이 뒷간.
먼발치에서 들리는 감탄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면 언제 봐도 재미있는 달팽이 뒷간을 보게 된다. 그 사이 햇살이 안개를 거두어 갔다.

이제는 낙동강 따라 하회마을까지 잇는 ‘병산·하회 선비길’로 향한다. 병산서원을 출발해 하회마을까지 가는 방법은 입교당 뒤 화산등산로 길과 낙동강 강변을 따라 걷는 하회마을길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산(屛山)’의 절경과 선비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하회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그 옛날 병산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학문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고자 걷던 길이자 서민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는 길이다. 강과 산이 함께 흘러 하회마을의 풍수지리적 아름다움과 자연의 풍광,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며 걸을 수 있다. 병산서원 화장실에서 강 따라 이어진 큰 길이 하회마을길이다. 선비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겸암 류운룡을 비롯해 풍산 류씨 사람들 무덤이 있는 화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뒤를 돌아보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너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넉넉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서애 유성룡을 흠모하고 따르던 조선시대 영남의 숱한 선비들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오고 갔을 것이다. 길 곳곳에 안도현 시인의 ‘낙동강’, ‘허도령과 하회탈이야기’ 등이 있어서 걷기의 재미를 더한다. 낙동강을 끼고 산비탈을 오르다 숨이 찰 때쯤이면 정상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조망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하면 하회마을에 다다른다. 정자에서 하회마을로 내려가다 한눈에 보이는 마을 풍경은 걸어왔던 노고를 풀어준다.

하회마을로 내려와 천천히 곳곳을 둘러본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 오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씨족마을, 양반마을의 형태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있어 2010년 7월 31일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벚나무가 심어진 낙동강 둑길을 따라 걸으면 부용대와 만송정 등 하회마을의 또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전경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하회마을에 오면 부용대를 빼놓고 갈 수 없다. 부용대로 가기 위해 배를 탄다. 예전에는 고정된 줄을 당겨 강을 건넜지만, 지금은 동력선으로 강을 건넌다.
강 건너 옥연정사 가는 길
오솔길따라 가다 보면 옥연정사가 나오고 왼쪽으로 부용대 가는 길이다. 서애는 큰 공훈에도 불구하고 당파싸움에 밀려 노년기를 옥연정사에 은거하며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징비록에는 혹독한 전쟁과 전쟁 이후 가난과 병마로 비참했던 서민들의 살림살이, 그 대책과 비방을 조목조목 적어 후세에 경계토록 했다. 부용대에 서면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산과 강이 ‘S’자 모양으로 어우러져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에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모습을 띠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왜 하회마을이 명당이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마을에는 충효당과 양진당이 대표적 종가로, 남촌댁과 북촌댁이 반가의 두 기둥으로 버티고 서서 상하를 어우르고 있다. 다시 강을 건너 하회마을로 되돌아와 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을 보러 마을 입구에 있는 탈춤공연장으로 향한다. 하회별신굿은 무동, 주지,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 선비, 혼례, 신방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며 탈춤공연장에서는 무동부터 양반까지 여섯 마당 공연을 볼 수 있다. 둥글게 지어진 공연장의 열린 분위기와 함께 생동감 있는 공연이 신명을 돋워주고, 각각의 특징을 잘 살려 생생한 표정이 일품인 하회탈을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고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산과 들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지난여름 폭염에 시달렸던 지친 몸과 마음을 불어오는 바람 속에 맡기고 싶은 날 이 길을 걸어보자.
1038193_318914_3505.jpg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기자입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