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실내화를 찾아 신는데 내게 맞는 신발이 없다. 신발들은 모두 제짝이 아니거나 굽 높이가 다르다. 같이 간 사람들은 용케 다 신었다. 할 수 없이 굽이 다 닳은 짝짝이 낡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전시장을 돈다.

알량한 나르시시즘이 나를 망쳤다
너에게 가 닿지 못 하게 했다
술과 꽃과 책과 하얗게 벗은 흰 자작나무 앞에서
오래도록 숨 가빠했다
불행한 영혼들만 사랑했으므로
나는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고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고
꿈에 뜬 무지개가 하늘을 휘저었다
모두가 헛것이었으나
헛것만이 가장 아름다운 상처였다
내 짝이었다





<감상> 그동안 알량한 나르시시즘(自己愛)으로 얼마나 세월을 허비하고 인생을 망치게 했는가. 주변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착각과 망각 속에서 얼마나 자신을 숨 가쁘게 했는가. 남이든 자신이든 불행한 영혼을 인정했을 때 그나마 상처를 덜 입지 않았던가. 모든 삶이 헛것(幻)으로 가득 찼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헛것만이 아름다운 상처가 될 수 있다. 또한 내 삶이 굽이 다 닳고 짝이 맞지 않는 슬리퍼였을지라도 진정한 내 짝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들이 손에 움켜쥔 욕망의 덩어리가 한낱 헛것임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