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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늘샘 김상천의 최근 저서인 ‘삼국지, 조조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조조는 그동안 난세의 간웅으로 평가를 받아왔으나 근래 새로운 리더십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조조는 천하의 유능한 인재를 도덕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널리 등용하여 십분 활용하였다. 전쟁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당대의 대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둔전병을 설치하여 굶주리며 떠도는 가난한 백성들의 살림을 안정시켰다. 조조의 정책 중 가장 뛰어난 것은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금지한 것이다. 후한 말기는 지방호족들의 토지 겸병이 극심하여 농민의 파산이 이어지고 계층대립이 격화되었다. 토지는 농민들의 생존 근거였지만 몇 년 동안 흉년이 들거나 재해가 들면 농민들은 먹고살기가 힘들어져 호족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빚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농토와 그들의 자식들을 호족들에게 팔고 농노가 되거나 유랑민으로 떠돌며 도적 떼가 되어야 했다. 이에 조조는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금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토지 겸병금지는 위, 촉, 오 삼국 중 위가 위·진으로 통일을 이루게 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팽창에 따라 부동산 투기로 돈 있는 사람들이 다주택, 대토지 소유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조조의 토지겸병 금지정책은 안정된 자작농 중산층의 확보로 민이 살찌고 국가 세수를 늘려 부민부국의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소수 기득권층의 대토지 소유가 늘어가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한 극빈층으로 떨어졌을 때 국가는 농민반란이나 혁명 또는 외침으로 무너져 멸망하였다. 따라서 소수 기득권층의 토지겸병 또는 대토지 소유를 막고 토지와 주택제도 개혁으로 중산층을 두껍고 튼튼히 확보하는 것이 국가를 존립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우리나라가 농지개혁을 실시한 지 70년이 되었다. 농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1949년 당시는 농지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농민들이 농지를 소유하여 자경할 수 있도록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그 당시 소수 기득권층이었던 대지주로 구성된 한민당은 농지개혁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왜곡시킨다는 명분으로 반대하였다. 그러나 38선 이북에서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지주들의 모든 농지를 무상으로 몰수하고 지주들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였다. 몰수한 농지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뚱의 공산당이 ‘농지를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농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장졔스의 국민당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전투 장비조차 공산당에 팔아넘길 정도로 부패하였다. 농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공산당은 부패한 국민당을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몰아내고 1949년 중국을 공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민당 당수 김성수는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고 지주들을 설득하여 조봉암이 입안한 농지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형태로 1949년 국회를 통과하였다. 농지개혁법이 시행됨으로써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은 가장 평등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농지개혁으로 이루어진 평등의 가치와 시장경제의 자율 속에서 박정희의 국가주도 경제개발정책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농지개혁 후 70년이 되는 지금 국민들의 주거안정과 빈부의 격차 해소를 위하여 주거목적 외 주택에 대한 몰수와 실거주자에 대한 분배라는 주택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무상이든 주택 공시지가에 따른 유상몰수 유상분배이든 주택개혁은 대한민국이 또 한 번 건전하고 평등한 바탕 위에서 새롭게 도약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주택개혁에 대하여 기득권층은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를 왜곡시킨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1949년 시장경제 체제하의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가 이루어 낸 개혁을 70년 만에 다시 우리들이 이루어 내야만 빈부격차를 막고 청년세대에게 안정된 주거를 보장함으로써 저출산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50년마다 1번씩 희년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한 여호와 곧 신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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