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어찰을 통해 소통정치를 펼쳤다. 어찰 정치는 치밀한 정국 구상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것이었다. 정조는 자파세력 뿐만 아니라 반대파 사람들과도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조정은 정조를 반대하는 노론 일색의 여소야대 구조였다. 정조 때 나주 벽서사건으로 인한 을사 옥사서 소론 세력이 궤멸됐기 때문이었다.

노론은 강경파인 벽파와 온건파인 시파로 갈라져 있었다. 정조는 벽파의 영수 심환지와 은밀히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오랑캐가 오랑캐를 다스리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했다. 심환지 역시 정조의 어찰 정치 의도를 알면서도 왕과 정면대결엔 위험 요소가 많아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갔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낼 때 반드시 찢어 없애거나 불로 소각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심환지는 없애는 척하면서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 덕분에 2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어찰 297통을 볼 수 있게 됐다.

정조가 심환지를 택한 것은 적이긴 하지만 불의를 싫어하고 청렴하며 원칙을 지키는 그의 성품 때문이었다. “경은 소론과 남인에게 미움받고 같은 편인 벽파에게도 경시당하고 있다. 매일 이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원래 불의를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 경의 유일한 장점인데 요즈음은 그렇지도 않다. 이후 잘못을 보거든 일일이 나와 상의하지 말고 바로 어용겸에게 연락해 처리하라” 자파 내에서도 소외당하는 심환지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노론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정조 어찰이다.

정조와 심환지는 정치적으로는 대립관계였으나 두 사람은 내밀한 협력으로 정국을 풀어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등 야당 반대하고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 반대편 하고는 소통하지 않는 일방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을 과시했다.

“야당 반대가 일반 국민의 여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사청문회 때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며 야당에 약을 올렸다. 반대편을 적폐의 몸통으로 보지 않고 협치를 위해 끌어안는 정조의 소통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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