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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 보존] 2. 군산과 목포 등 우리나라의 근대문화유산 보존

거리마다 건물마다 고스란히 남은 흔적…과거·현대의 교차점 군산·목포를 걷다

박용기 기자 ygpark@kyongbuk.com 등록일 2018년10월11일 18시52분  
목포 근대역사관 2관
1. 홍콩의 근대문화유산보전

2. 군산과 목포 등 우리나라의 근대문화유산 보존

3. 포항, 경주 등 경북지역의 근대문화 유산 보존과 문제점

4.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인식전환과 지역 문화재 정책 방향



목포와 군산은 우리나라 근대역사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이들 지역은 이를 도시재생을 통한 관광 자원화로 연계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목포 만호동·유달동 일원과 군산 장미동 일원이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문화재로도 등록됐다.

만호동·유달동 일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11만4038㎡)은 1897년 개항 이후 목포가 격자형 도로망에 의해 근대적 계획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과 당시의 생활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심지역이다.

장미동 일원의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15만2476㎡)은 1899년 대한제국 개항 이후 초기 군산항의 모습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의 아픈 역사와 근대산업화 시기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시설과 흔적들이 잘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2019년부터 구역 내 문화재 보수정비, 역사경관 회복 등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이들 지역이 과거와 현재, 문화재와 지역이 공존하는 특화된 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목포시

1897년 개항한 목포는 ‘목포진’에 ‘목포 해관’을 설치하고 그 주변에 각국 거류지를 설정해 근대기 통상 항만도시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격자 도로망에 각종 관공서·학교·주거·상업시설 등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들어선 근대적 계획도시로 발달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다양한 시대상이 반영된 도시 모습이 남아있어 목포 지역 근대도시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목포 근대역사관 1관에 있는 근대도시 목포 출발 자료
△목포 근대역사관 1관 (구 일본영사관)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목포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영사관으로 지어졌다.

일본은 영사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조선 정부로부터 만호청(1895년 폐진된 목포진)을 빌려 사용했고, 유달산 고지대에 임시 건물을 지어 이관했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해 12월에 완공했다.

이후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사용됐고, 광복 이후 1947년부터 목포시청, 1974년부터 구 목포 일본영사관, 1990년 1월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다 최근 목포문화원이 이전함에 따라 보수 후 2014년 목포 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했다.

근대역사관 1관은 근대역사의 보물창고라고 불릴 만큼 목포의 시작부터 근대역사까지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으로 2층 규모에 총 7개의 주제로 전시돼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 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근세 서양건축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목포 근대역사관 2관은 한국 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으로 현재 남아있는 2곳의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중 부산에 비해 규모 면에서 앞선다.

또한 부산의 동척 지점 건물은 그동안 미문화원에서 사용하다가 반환되어 부산시에서 이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으로 알려져 목포지점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식민정책의 선봉 기관, 조선 농민 수탈기관으로서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의 첨병이었고, 특히 동척 목포지점은 그 가운데에서도 사리원 지점과 함께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었다.

현재 목포 근대역사관 2관은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1920년대 말 잊혀가는 목포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인식의 산 교육장으로 이곳 역사관에는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일제 침략 사진을 비롯해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치열한 구국 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사진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구 목포 화신 연쇄점

구 화신백화점 건물로 잘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목포 지역에서 동아 부인상회와 함께 대표적인 판매시설로서 당시 건물로서는 특이하게 철근콘크리트 라멘조로 건축됐다.

외관도 수직선, 수평선, 원을 강조하며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하고 내부도 넓은 개방적 공간을 구성하며 모더니즘 건축기법을 선구적으로 적용한 근대기 목포 지역의 백화점 건물로서 당시의 생활상, 공간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상가 건물이다.

지난 8월 6일 등록문화재 제718-15호로 지정됐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현 근대 건축관)
□군산시

조선 시대 군산은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세곡이 모이는 군산창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군산진이 설치돼 경제, 군사적 요충지였다.

1899년 5월 1일 군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해안 일대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개항장을 관리하는 옥구감리서를 두었다.

조계지란 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 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지역이다.

군산 조계지는 1899년에 형성되어 1914년까지 존속됐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1899년 대한제국 개항 이후 초기 군산항의 모습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 항으로서 근대항만의 역사와 근대 산업화 시기의 어업 및 산업생활사를 잘 보여준다.

인근에는 대한제국 개항기 건립한 구 군산세관 본관과 일제강점기 경제·상업적 수탈을 위해 들어선 구 일본 제 18 은행 군산지점 및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이 있다.



△군산 내항 뜬 다리 부두 (부잔교)

군산 내항의 뜬 다리 부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서 군산항의 제3차(1926년∼1932년)와 제4차 축항 공사(1936년∼1938년)를 통해 건설된 뜬 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된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 항으로서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우수하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군산시
△군산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이 건물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資平)가 설계해 1922년에 신축한 은행 건물이다.

당시 일본 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초석을 쌓아, 일제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2008년 보수·복원 과정을 거쳐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산 근대미술관(구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
△군산 근대미술관(구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

18 은행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숫자 18은 은행 설립 인가 순서를 의미한다.

군산지점은 조선에서 7번째 지점으로 1907년에 설립됐다.
구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현 군산 근대미술관). 군산시
군산의 18 은행은 주 업무가 무역에 따른 대부업이었다.

광복 후 대한통운 지점 건물로 사용됐으며 2008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보수·복원을 통해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남 관세 전시관(구 군산 세관 본관)

1908년 대한제국(순종 2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프랑스 혹은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 건축했다는 설이 전해온다.

군산세관은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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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 기자

    • 박용기 기자
  • 김천,구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