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낮은 돌담길 굽이굽이 어깨동무 한 고택의 풍치

금당실 돌담길.
‘단맛 나는 물이 솟는 샘’이라는 뜻을 지닌 경북 예천(醴泉)은 북동쪽으로 소백 준령이 감싸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마을이다. 특히 금당실 돌담길은 99가구 전통가옥이 만들어내는 풍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당실’과 ‘맛질’ 등 두 마을은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대표적인 양반마을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곳에 도읍을 만들려다 큰 내(川)가 없어 무산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 정감록의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한 곳으로 선비들의 은둔처로 각광 받았다. 그만큼 선비들의 교류가 잦았고 번성했다고 한다.
금당실 꽃 돌담길과 가옥.
금당실길은 병암정에서 시작해 맛질~금당실 마을~금당실 송림~예천 권씨 초간 종택~초간정까지 들판과 평지를 걷는 길이다. 예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용문행 시내버스를 타고 병암정 정류소에서 내린다.
금당실 마을 안내도.
병암정 이정표 따라 다리를 건너 길을 걷다 보면 절벽 끝에 올라앉은 정자 하나가 보인다. 조선 말기 1898년 지었다는 병암정(屛巖亭)이다.
병암정
병암정
병암정은 이름 그대로 병풍 같은 바위 위에 있는 정자다. 정자는 어른 키 몇 배 될 듯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았다. 절벽 아래에 둥근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작은 인공섬인 석가산을 만들었다. 석가산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바둑판 위의 검은 돌처럼 점점이 놓여 있다. 사당인 별묘를 지나면 병암정이 바로 앞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마당에 선다. 최근 복원된 건물이라 고졸한 멋은 없다.
병암정에서 바라본 금당실 들녘.
담장 아래 놓인 디딤돌에 올라서면 병암정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풍요로운 결실을 기약하는 너른 들녘이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멀리 맛질과 금당실 마을이 보인다.
금당 맛질 반서울
왔던 길로 다시 나와 금당실 마을 가기 전 들판을 가로질러 맛질로 향한다. 맛질은 927번 지방도를 경계로 큰 맛질과 작은 맛질로 나뉜다. 높은 산이 에워싼 가운데 큰 들이 펼쳐져 있는 마을이 바로 큰 맛질이다. 정감록의 십승지지 중 한 곳인 ‘금당, 맛질’ 반서울은 수많은 고택과 고가옥, 종택이 잔존하는 양반문화 집적지 중 하나다. 500여 년 전 함양 박씨, 원주 변씨, 안동 권씨, 예천 권씨, 의성 김씨 등 5개 성씨가 혼인으로 인척 관계를 맺어 집성촌을 이뤘다. 수만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고, 상업교류의 중심마을이기도 했다.

함양 박씨 주부공 종가의 작은 집에 해당하는 미산고택이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미산고택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으며, 대원군이 미산재라고 현판을 써 주었다고 전해진다. 큰맛질에서 용문면사무소 방면으로 가다 보면 작은맛질이 나온다. 안동 권씨 복야공파 야옹 권의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사는 마을이다. 동양 최초 음식조리책‘음식디미방’을 지은 정부인 장씨의 외가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장씨 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와 맛질의 요리를 배워 익혔을 것이다. 안동 권씨 입향조 권의를 모시는 야옹정 사당이 눈에 띄고, 춘우재 종택과 연우 고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마을에서 나와 우측 금당실 마을 방향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방두들고개를 넘으면 큰 고건축물이 웅장한 초정서예관이 눈에 띈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필이자 5대 국새의 글자를 새긴 초정 권창륜 선생이 원장이다. 이곳에서는 초정 선생이 직접 이론 강의와 실기 지도를 한다. 또 귀중한 서예유물들도 상시 전시돼 있다. 도로를 따라 금당실 마을로 향한다.
금당실 돌담길.
기와집이 즐비하고 돌담장이 7㎞나 이어지는 전통마을인 금당실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전통마을이다.
금당실 송림 표지석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지형으로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마을 방풍림으로 ‘쑤’라고 불리는 800m가량의 아름드리 소나무로 가득한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은 이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마을의 비보(裨補)숲이자 방풍림이다.
금당실 송림
금당실 마을의 특징은 아름다운 고택과 채소밭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키 낮은 돌담길이다. 투박한 돌들을 낮게 쌓아 올린 돌담 넘어 고택과 마을 집들의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36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을 정도로 마을 규모가 크다. 돌담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막돌담장, 토석담장, 기와담장 등 낮은 돌담이 정겹다. 돌담 사이로 텃밭이 있고 고샅길이 구불구불하다.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많은 것은 2006년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고택과 일반집을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마을 이름인 ‘금당실’은 금당곡 혹은 금곡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지나가면서 ‘달구리재(학명현)가 앞에 있고 개우리재(견곡현)가 오른쪽에 있으니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같다’고 해서 ‘금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정표 따라 돌담길을 걷다 보면 금곡서원, 덕용재, 우천재, 추원재와 사당, 반송재 고택, 사괴당 고택 등 보존가치가 높은 고택이 즐비하다. 집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나지막한 돌담이 마을을 깊숙이 가로 지르며 S자 형태로 흘러들어 간다. 돌담길은 집안을 연결하며 미로처럼 뻗어 있다. 길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처럼 시간을 잊고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예천 금당실 가서 옷 자랑 하지 말고, 구례 가서는 집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다시 발길을 돌려 금당실 송림을 둘러본 뒤 맞은편 도로 지나 상금교 건너 오른쪽 금곡천 따라 걸으면 죽림리(竹林里·대죽마을)가 나온다. 죽림리는 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과 일상생활을 기록한 ‘초간일기’를 지은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1534~1591)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예천 권씨 집성촌이다.

초간은 1560년(명종 15) 문과에 급제해 좌부승지 관찰사를 지낸 뒤, 1591년(선조 24)에 사간(司諫)이 됐다. 일찍이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해 학문에 일가를 이뤘고,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과도 친교가 두터웠다. 초간 선생은 죽림리에 머물며 매일 북두루미산의 산자락을 따라 초간정사를 오갔다. 그 예던 길은 사색의 길이고 명상의 길이었다. 초간종택에서 초간정을 가려면 옛길의 자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초간정 출렁다리
초간종택을 나와 앞을 지나는 마을길 따라 걷다가 산길로 들어선다. 길은 포장돼 있고 오른쪽 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계단을 세듯 천천히 올라가다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이내 고갯마루에 다다른다. 이곳부터 초간정까지는 내리막이다. 초간종택에서 50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 솔숲 사이로 초간정이 보인다. 논을 지나고 소나무길을 지나 초간정 살림집 대문 앞에 도착한다.
초간정
초간정
초간정을 전체적으로 보려면 초간정 오른쪽 출렁다리를 건너 언덕에서 보는 것이 좋다. 금곡천이 바위를 감싸 흐르고 바위 위에 초간정을 지었다. 그 모습은 바다 한가운데 뜬 섬을 닮았다. 세상 시름을 잊은 채 고고한 선비인 양 금곡천을 굽어보고 있다. 정자의 처음 이름은 ‘초간정사’였다가 나중에 ‘초간정’으로 불리게 된다. 정사 이름은 초간이 당시(唐詩)에서 따 왔다. 16세기 영남 사림파들 삶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냇물 소리만이 적막을 깨운다. 초간정은 인공적으로 원림을 만들어 건축한 것이 특징으로 소쇄원과 함께 손꼽히는 아름다운 원림이다. 예천 8경 중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지만, 초간 선생이 말년의 외로움을 견디며 글을 썼던 쓸쓸함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걷기를 마치고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마음 쓰이는 구석도, 속상한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고 일상이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탈로, 유흥으로, 독특한 취미에 집중하는지 모른다. 일단 걸어보자. 걷다 보면 자신을 만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바로 자연이다. 다른 생각을 떠올릴 이유도 없다. 그저 걷고 또 다음 목표를 향해 갈 뿐이다. 그러다 목표지점에 도달한다. 걷기는 단순하고 거친 여정이 자신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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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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