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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우스개로 듣던 ‘집 밥 먹는 삼식이’ 퇴직하니 실감 나고 나는 자동으로 삼식이다. 유행하던 삼식이 사전에도 ‘백수로서 집에 칩거하며 세 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사람을 말한다’ 고 적혀있다. 어찌 보면 날 두고 하는 말이다. 무시당하는 기분이고 천박하여 남이 삼식이 라고 하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바로 그 듣기 거북한 삼식이 딱이다. 인정한다, 백수보다는 듣기 낫다.

하루 세끼 아침, 점심, 저녁 집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집 밥 꼬박꼬박 잘도 먹는다. 변비로 새벽 믹서기에 갈아주는 과일즙도 한 끼 추가하니 나는 ‘사식 놈’ 이네 하며 아내를 보며 고맙고 미안하다며 빙그레 눈웃음을 쏜다. 사람들은 우스개로 집에서 하루에 한 끼도 집 밥 안 먹는 사람을 ‘영식님’이라고 깍듯이 배웅하고, 아침 한 끼 집 밥 먹고 출근하면 ‘일식 씨’ ‘밥 잡수세요’하며,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끼 집 밥 먹으면 ‘이식 군’ ‘밥 드세요’한다. 하루 세끼 집 밥 먹으면 ‘삼식이’ ‘밥 먹어요’하면 이미 식탁에 와 있다는 개그다.

세상이 바뀌어 요즈음 아내가 해주는 집 밥 한 끼를 먹는 ‘일식 씨’만 되도 부럽다고 한다. 하루 세끼 아내가 해주는 밥 차려 주는 가정은 하늘에 별따기다. 툭 하면 요리, 설거지 생략하는 우유나 빵, 라면으로 때우고, 주말이면 외식하면 누워서 떡 먹기 식사 끝이다. 집에서 진수성찬 생일이나 명절, 제사 때나 기다리면 한번 호강한다. 밥이나 설거지 가사 일 아내 전담이 아니다. 남자가 하는 집도 안 보여서 그렇지 수두룩하다. ‘사나이 대장부’ ‘하늘 같은 남편’ 메아리 되어 날랐다. 창피하고 체면 구기는 쪽 팔리지만 이게 현실이고 가정 평화를 위해서 남자가 십자가를 지는 가사 내면 실상이다.

옛날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진지 드시고 다음은 우리 차례다. 엄마나 여동생은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조다. 같이 밥 먹을 때도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어야 우리가 들고, 할아버지가 수저를 놓기 전에는 밥 다 먹어도 할아버지가 수저를 놓아야 밥상을 뜬다. 밥 먹을 때 말 한마디 하다가는 혼난다. 복 나간다고 불호령이다.

인생의 목표 왜! 사느냐? 옛날이나 지금이나 답은 먹자고 산다.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짐승도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 모든 생물도 먹기 위해 산다, 안 먹으면 죽는다. 인간도 매일 먹는 ‘쌀’ 나무인 벼도 논에 물을 대 주어 먹어야 산다. 다 먹자고 산다. 뭐든지 사 먹을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돈. 돈 때문에 싸우고 원수지고 한다. 돈! 많이 벌어 한도 끝도 없이 먹고 누리자고 돈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에서 대드니 시끌벅적 왁자지껄 이다.

종일 집에 있어 보니 백수도 시간이 없다며 드러나게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바빠 안달을 떤다. 새벽 산책하고, 세수하며, 샤워하고, 아침 먹고, 청소하고, 돌아서면 점심 시간이다. 컴퓨터 검색하고 바둑 한판 뜨고 시내 볼일 보고 성모당에 기도하고 오면 저녁이다. 시간과 여유가 많은 만찬은 푸짐하게 먹는데 요리하는 데 시간 많이 걸려 기다리는 데 지친다.

하루 일정의 절반은 먹는데 투자한다.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또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한 번 더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면 심판 세끼 해결로 또 하루가 저문다. 살라고 먹고, 먹자고 산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실랑이 하다가 날 새듯이 하여간 살라고 먹는지, 먹자고 사는지, 사는 자체가 너무 먹는데 밝혀 추하지만 현실은 먹는 것으로 시작하고 먹는 것으로 종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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