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서 ‘예기’에는 주나라의 정공 때 “아비를 죽인 자식이 있어서 그를 죽이고, 그 가옥을 파괴하고, 집터를 웅덩이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패륜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본인 뿐 아니라 그가 살던 집을 헐고, 집터를 파 물을 대 연못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가저택(破家瀦澤)’ 처벌을 내렸다. 이 주나라 법이 고려 시대에도 전범이 됐다.

고려사 인종 7년 조에는 중서문하성에서 “충주 사람 유정이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그 고을 수령과 관리들이 백성을 잘 가르치지 못했으니 모두 아전으로 강등시키고 ‘주’를 ‘군’으로 낮추기 바랍니다”고 왕에게 아뢰었다. 이를 들은 왕은 신하들과 의논했다. 신하가 예기의 파가저택 판례를 들어 “아비를 죽인 자를 사형에 처하고, 집터를 웅덩이로 만들었지만 주를 군으로 낮추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해서 왕이 이를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종실록 12년 조에는 “밀양 사람이 아비를 죽인 일은 크나 큰 변고입니다. 낙안현의 경우 처음엔 군이었다가 이런 변이 있어 현으로 강등했으니 이것은 한 등급만 떨어뜨린 것입니다. 지금 밀양은 부를 현으로 만들었고, 그 나머지 땅은 모두 다른 읍에 소속시켰으니 혁파할 것까지 없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비를 죽인 이 패륜아의 이름에 ‘효(孝)’자가 들어간 박군효에 대한 처벌을 논한 내용이다. 그는 대낮에 동네 한가운데서 아비의 머리를 난타해 살해했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주나라 예법을 따라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물론 그 지역까지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강력한 처벌을 내렸다. 이를 보면 옛날부터 패륜범죄는 있었다.

최근 들어 취직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신다고 나무라는 아버지를 살해했다거나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패륜아들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 빈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 해서 사회적 윤리의 결핍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존속살해범이 매년 50명에 이른다. 최근 대구의 30대가 돈 때문에 어미와 짜고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비를 차로 치어 살해하려 하고, 끝내 어미까지 죽이려 한 비정한 패륜아가 구속됐다. 윤리가 어그러진 ‘패륜(悖倫)’ 시대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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