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주실마을 월하 조운도 후손가에서 기탁
이번 발굴은 영양 주실마을에 위치한 월하 조운도(1718~1796)의 후손가에서 기탁한 것으로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화폭의 크기는 각각 세로 40㎝, 가로 30㎝ 정도이다.
각 폭의 왼쪽 또는 오른쪽 윗부분에 ‘비로봉’, ‘비홍교’, ‘마하연’, ‘정양사’, ‘보덕굴’, ‘구룡폭’, ‘단발령’ 등 그림 제목과 ‘겸재초(謙齋草)’라는 서명이 적혀 있으며, 그림 제목과 서명만 있고 창작 동기와 감상 등을 표현한 화제나 인장은 없다.
금강산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산으로 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시가나 문장, 그림으로 많이 표현됐으며, 이번에 발굴된 겸재의 금강산 그림은 화폭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내금강의 각 명소를 부감법이나 원형의 구도를 사용하여 요약적으로 표현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금강산 그림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 가운데 ‘초본(草本)’ 내지 조본(祖本)의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겸재 산수화의 밑그림으로서,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의 그림의 원형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그의 진경산수 화풍 연구에 주요한 기준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그림의 발굴로 인해 서화류의 전승과 관련하여 영남 지역 선비들이 지녔던 산수 인식 내지 예술 향유의 양상을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점도 그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이번에 공개되는 겸재의 금강산 그림은 진경산수화 양식의 성립 과정이나 겸재 그림의 구도와 필법 내지 표현에 대한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집안에 겸재의 금강산 그림이 전래 된 경위에 대해서는 문헌기록이 전하지 않아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지만 다만 조덕린이 노년에 이르러 예전에 노닐었던 금강산이 그리워서 겸재에게 금강산 그림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는 51세 때 강원 도사가 되어 금강산 등을 유람한 적이 있으며, 당시에는 나이가 들어 산수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그 속에 노니는 ‘와유(臥游’)가 성행했었기 때문에 겸재가 청하현감으로 있을 때 영양 주실을 방문하자, 옥천 집안에서 ‘와유’의 자료로 삼고자 금강산 그림을 부탁해 소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