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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경상북도 문화정책자문관
요즘 주말에 커피 마시는 즐거움이 생겼다. 지인 몇 명과 주로 대구 남산동의 조그만 커피집에 가는데, 향긋하고 새콤한 게 상당히 맛도 있다. 이따금 문을 열고 길에 나가 창에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 시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사무실에서도 바쁜 틈에 잠시라도 차 한 잔 나누는 시간에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소확행’이라 하며 이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다고 한다. 작고 확실한 행복! 이 작은 일이 자라서 유행이 되고 풍속이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미풍양속을 가지는 것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사회는 각박하고 혼탁하며 미래가 불확실하다. 크나큰 행복은 서민에게 멀리 느껴지고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소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얻는 행복이야말로 실제적이고 확실하므로 생활풍속이 될 수도 있다. 이 트랜드는 일상의 삶에서 오는 휴머니즘이 가득하기에, 소재가 풍부하다.

그런데 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얻는 법은 옛 선비들이 살아가신 인생의 묘미다. 조정에 나가지 않고 일생을 처사로 마친 선비들. 그들은 도덕과 예를 논하고 시대를 개탄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나무를 가꾸고 숲길을 내며 정자를 짓거나 분재를 하기도 하였다. 때때로 시를 짓고 이를 읊조린다. 꽃 피는 아침과 달 뜨는 저녁에 벗과 더불어 약한 술을 따르기도 하고 맑은 차를 나누기도 한다. 허주 이종악 같은 분은 거문고를 안고 선유를 나가기도 했다. 고성이씨 기록을 보면, 임청각을 지은 이명은 매일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형님인 이굉의 처소로 가서 함께 거문고를 뜯으며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모두 작은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뿐이랴. 어느 봄날 공자가 제자들과 봄을 느끼고 있다가, 모두에게 각자의 포부를 이야기해 보라 하셨다. 여러 제자들이 평소의 배운 학문을 나라의 일에 적용하고 싶은 소감을 차례대로 말하였는데, 증점이란 제자는 그냥 슬(瑟)만 뜯고 있었다. 점아 너도 소회를 말해보거라 하시니, 증점이 말하기를, “늦은 봄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 라 하니, 공자는 “나도 네 뜻과 같다.”라고 하셨다 한다. 유학이 ‘치국평천하’를 지향하지만, 일상에 있어서는 오히려 봄날 푸른 풀을 밟고 바람 부는 언덕에 오르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마당 쓸고 손님 맞는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선비들이 그 큰 공부를 하고서 혹여 그것을 써보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강호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선비들이 강호에서 노닐 때,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어부사(漁父詞)다. 어부사의 세계는 곧 선비의 세계라고 이우성 교수가 이야기 하였는데, 강호에서 갈매기를 짝하며 어부사를 노래하는 가운데, 선비의 도가 있다. 지난 10월 20일 경산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정가(正歌)경창대회도 선비들의 여가생활의 맥을 오늘에 계승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본다.

날이 갈수록 인정과 의리가 쇠진해 가는 오늘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아름다운 풍속이 확산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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