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소백산황태덕장.jpeg
▲ 예천군 소백산황태덕장. 경북일보DB

드디어 동해 바닷가 작은 포구를 벗어났다. 차는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절양장의 산허리를 휘돌고 돌아 나간다. 대관령의 험준한 고갯마루를 타고 넘어 줄곧 서(西)로, 서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현기증으로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속이 메슥거려 온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탁 트인 분지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느닷없이 나타난 황태 덕장, 끝 간 데를 모르게 늘어선 명태의 군상들이 사정없이 후려치는 칼바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인 채로 꾸덕꾸덕 몸피를 줄여 가는 중이다. 이 깊은 산중에 웬 포로수용소가 있었더란 말인가. 사뭇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고통스런 표정에서, 자유를 갈구하며 몸부림치는 뭇 백성들의 환영(幻影)을 본다. 한껏 벌린 입에서는 피 끓는 혁명가가 울려 나오는 듯도 싶다. 불현듯 가공할 폭압의 부당성을 붓끝으로 고발했던 피카소의 명화 ‘성난 군중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까닭인가.

얼었다 녹고 얼었다 녹고 하길 대체 몇 차례이랴.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하나같이 고개를 뒤로 젖뜨린 채 하늘에다 대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이라도 하듯 자못 비장한 얼굴들이다. 사람다운 삶을 부르짖다 붙잡혀 와 가혹한 고문 끝에 교수대에 매달려 학살당한 늘어선 주검들이여! 거친 함성 소리가 저 하늘 끝까지 닿을 듯도 한데…. 환청인가, 상금도 그 외침이 해풍을 가르며 귓전을 난타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입술을 떡떡 들러붙게 하는 동지섣달의 매운 산바람에 온몸으로 맞서는 명태들의 항거, 작업부들은 그들의 최후의 부르짖음이 마침내 사위어들었다 싶으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착착 거두어서 한 두름씩 매듭을 지을 것이다. 이 순간 검푸른 바다 깊은 골 곳을 거침없이 누비며 군무(群舞)를 즐겼을 그 당당한 모습이 얼핏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죽어서까지 끈끈한 동지애를 버리지 못하는 듯 스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어깨동무를 하고는 어느 낯선 시장 골목 어물전을 지키며 팔려갈 날을 기다릴 것이다. 자신들을 마지막으로 거두어 줄 임자가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면서.

예부터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이 전해온다. 그만큼 이 땅의 사람들은 명태를 즐겨 먹었고, 또 발걸음에 차일 정도로 명태는 아주 흔하디흔한 바닷고기였다. 하지만 꼭 흔해서 많이 먹었던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건사방법에 따라 북어, 황태, 동태, 코다리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미각을 달리할 수 있었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으로서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명태는 본시 따뜻한 특질을 지닌 온성식품이 아닌가. 그런 까닭으로 하여 우리 몸속에 쌓인 독성을 풀어내고, 소변보기를 수월케 해 주는가 하면, 소화기능을 도우는 약리작용도 겸한다. 아마도 그래서이리라, 어릴 적부터 체격이 유달리 약골이었던 나를 키운 몇 할도 바로 이 명태가 아닐까 싶다.

난 참 지독스레 입이 짧은 까탈공자였다. 그런 내게 어쩌다 감기몸살 같은 불청객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아예 절곡을 하기가 일쑤였었다.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손자 사랑이 유다르셨던 할머니의 걱정이야 풀어놓지 않아도 그림이다. 보다 못한 할머니는 궁리궁리 끝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의 쓰임새를 위해 다락방 깊숙이 건사해 두었던 명태에 생각이 미치셨을 게다. 이때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깊은 잠에 취해 있던 그 명태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이다. 할머니는 장작개비같이 빳빳한 건태를 툭툭 방망이질하여 참기름 동동 띄운 북엇국을 끓여선, 종일 까라져 누운 손자의 파리한 입술에다 한 술 두 술 떠 넣으셨다. 하루 세 번의 끼니 해결조차 만만치 않았던 집안 형편으로 병원 치료란 언감생심이었던 시절, 북엇국은 할머니가 당신으로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었으리라. 할머니의 이 북엇국으로 나는 잃었던 기운을 되찾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육신의 일부에는 명태의 성정이 배어 흐르고 있을 것만 같다.

생각의 타래를 감고 있으려니 오래된 기억 한 자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애송이 선생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의 일이다. 꽃 그림자가 그윽이 운치를 돋우는 어느 화사한 봄밤이었다. 학교 근처의 한 깔밋한 음식점에서 새 식구들을 환영하는 모임자리가 마련되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동료 교사 가운데 ㅂ이 자청을 하여 노래 한 곡을 선사했다. 그 노래가 바로 <명태>였었다. 나는 그때 명태라는 가곡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첫사랑처럼 너무도 깊이 매료되어 버렸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 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마지막 소절에 이르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파르르 떨려오는 야릇한 전율 같은 감흥에 휩싸였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 아릿했던 떨림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느 불우한 예술가를 위한 조건 없는 자기희생, 유머러스하면서도 짙은 페이소스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 절창을 통해 나는 참된 사랑의 의미를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오로지 아낌없이 주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명태에 더욱 애착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몇 해 전 어느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우리가 바다 건너 제국주의자의 마수에서 고통 받고 있던 시절, 일본인들은 식민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시키려 들었고, 그 상징적 의미로 명태의 눈알을 모조리 빼버렸다는 것이다. 지맥을 끊어 놓으려는 야욕으로 이름난 산천의 요소요소에다 쇠말뚝을 박은 행태와 상거(相距)가 어떠할까. 일제가 서른여섯 해 동안 저지른 온갖 비열한 짓들로 볼 때 새삼스러울 것이야 없지만, 어떻든 그들이 명태에 대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명태가 그냥 단순한 바닷고기 정도로 여겨지진 않았던 것임은 분명하다.

덕장에 드레드레 걸린 명태들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다본다. 아까전과는 달리 결기가 많이 가라앉고 표정이 한결 온화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저주받을 대상을 부끄럽게 하는, 순하지만 가슴에 사무친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용서해 주자. 용서해 주자. 용서만이 이기는 길이 아니더냐.’

명태에는 조선 사람들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쉰다. 우리와 삶의 애환을 함께해 온 생선, 명태는 우리 몸의 살과 피가 되어 주고 우리 한민족의 정서와 가장 잘 맥이 닿아 있는 바닷고기임에 틀림이 없을 성싶다. 학교마다 제각각 특성을 살려 교화며 교목을 정하듯, 만일 이 땅의 백성들에게 제일 어울림 직한 우리의 물고기를 정한다면 바로 이 명태로 해도 좋으리라.

명태는 그다지 값나가는 생선이 못된다. 덕분에 주머니 사정이 푼푼치 못한 서민들의 삶의 벗이 되어 주기에는 안성맞춤인 물고기이다. 갈치처럼 비린내를 풍기지 않는다. 고등어처럼 기름기가 번들거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상어 같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투박스런 생김생김과 소박하고 담백한 맛으로 늘 우리의 식탁을 지켜주는 터줏대감이다. 일상사에 지친 가난한 월급쟁이들의 퇴근길 대폿집 찌갯거리로 명태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유영하다 어느 파도 거세게 몰아치던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와 덕장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서 팔려갈 날을 꿈꾸는 명태, 얼핏 그 까만 눈동자에 어리비친 눈물 자국을 나는 보고 말았다. 영생이 어디 별다른 데 있는가. 사람의 뱃속에 장사지냄으로써 새로운 육신의 일부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이어 나가면 그게 다름 아닌 영생인 것을…. 마치 식물인간의 장기(臟器)가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되어 새로운 삶을 계속해 가는 이치처럼.

저 차디찬 북방 캄차카반도 근해에서 태어나 수천 킬로미터를 남하하면서 멀고 먼 항행을 거듭하다 운수 사납게 붙잡힌 신세가 되어 마침내 내 살점의 일부로 승화할 명태의 일생, 오늘 아침 식탁에 오른 북어찜을 보면서 그의 힘에 겨웠을 한살이를 위로한다.

“물고기의 몸을 받아 깊은 바다 속 비경(秘境) 어린 세계에서 하루를 살아도 오히려 충분하거늘, 몇 년 세월을 종횡무진 마음껏 누비고 다녔으니 너의 한평생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 아니냐. 훠이 훠이 잘 가거라. 부질없던 삶의 애착일랑 모두 다 내려놓고 부디 부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거라.”

잠시 눈을 감은 채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러고 나선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살점 한 조각을 집어 천천히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혀끝에 전해져 오는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뒷맛, 생의 마지막 의지처로 삼은 고향이 내 뱃속이 될 줄이야 그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이것은 명태가 바치는 정갈한 육보시가 아닌가. 그만한 공덕을 쌓았으니 다음 생에는 틀림없이 더 나은 인연으로 환생할 수 있으리라.

명태를 앞에 두고 나는, 먼 훗날 언젠가 내 육신이 사위는 날 박테리아의 몸속에 장사 지내게 될 그 최후의 순간을 그려 본다. 따지고 들면, 어차피 명태나 우리들 인간이나 궁극엔 똑같은 운명이 아닌가.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물고 물리면서 돌아가는 간단없는 순환이 대우주의 엄숙한 질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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