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들일 때가 사람의 진면목이래

가로등을 세우다 우리가 쉰다
쉰다,는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에 대한 예의
그의 옆구리도 열둘의 제자가 지켰다는데
결국 옆구리만한 한 사원도 없다는 거야?
아니, 가로등을 심는 건 우릴 심는 거라니까

지구도 잠시 자전을 멈추고
흙더미 붉은 귓바퀴를 곧춘 채 듣는다
무엇을 세우려고 구덩이를 파는 건 인간뿐이란 말이지?

그리고 한동안은 질문이자 대답인 농담들

우린 모퉁이잖아, 가로등처럼?
그래, 허공에 과녁을 새기는 십자가처럼
날 저문다, 어서 일 마저 끝내자고
구덩이 가득 붉어지는 지상의 일몰 / 그런데 대체 언제쯤 우린

됐어! 우린 서로가 돌아들어야 할 모퉁이라니까





<감상> 모퉁이, 구석, 모서리, 변두리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납니다. 그것도 깨달은 사람일 경우에만 나타나지요. 중심을 향해서 구덩이를 파고 무엇을 세우려는 건 인간뿐이라는 질문이자 농담은 결코 농담이 아닐 것입니다. 우린 구덩이를 파고 중심으로 향하는 욕망을 지니므로 서로가 돌아들어야 할 모퉁이는 너무 서글픈 현실을 안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는 중심에 있는 자들이 차지하고 세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로등처럼 변두리에서 중심을 환히 밝히는 존재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변두리가 있기에 중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