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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등바등한 속세에 살아오면서 느슨한 황혼기에 한 번쯤 되돌아보면 산세월은 누구나 같다. 목숨이 길고, 짧고, 재물은 굵게, 가늘게 굴리는 차이다. 길고 굵게, 길고 가늘게, 짧고 굵게, 짧고 가늘게 살다 간다. 단 한 번 사는 인생 길고 굵게 사는 행복 누리며 살려고 야단법석 떨어가며 생존전쟁 한창이다.

명문 학교 들어가고 노후 보장되는 신의 직장에 입성하여 평생 친구 좋은 동반자 만나 알콩달콩하게 살려고 젊을 때 한 보따리 고생도 좋다고 사서한다. 노숙자나 대통령이나 하루 24시간씩 공평하게 주어지며 날이 가고 달이 차서 다 같이 똑같게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 햇수를 더해가며 자동차 생산연도처럼 연식이 쌓여만 간다.

10대는 시속 20㎞로 시골 농로를 자전거를 타고 왼쪽·오른 쪽 두리번 살피며 살아가는 속도로 가며, 20대는 40㎞, 30대는 60㎞, 40대는 80㎞로 국도나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듯 가는 기분이다. 50대는 100㎞, 60대는 120㎞로 고속도로를 신나게 질주하며 가는 빠른 세월이고, 70대는 140㎞, 80대는 160㎞, 90대는 180㎞ 이상으로 KTX나 비행기를 탄 듯 빨라 ‘밤사이 안녕’이라고 빠르게는 하루, 늦어도 사흘만 안 보여도 천국에 안착했다는 부고장 날아올까 겁난다.

연식이 묵을수록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는 말을 새기며 아쉬워한다. 올 때는 모르고 태어났지만 갈 때는 알기에 나이가 많아질수록 죽음의 공포는 비례한다. 동화 ‘팥죽 한 그릇 주면 안 잡아먹지‘호랑이에 겁먹은 할머니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생 살면서 뭐니 뭐니 해도 죽음의 공포가 제일 무섭다.

젊을 때는 옆과 뒤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생계를 꾸려가기도 바쁘고 집 장만에 자녀 교육과 뒷바라지에 희로애락을 반복해가며 정신없이 살다가 되돌아볼 여유가 있을 때는 어느덧 각박한 인생을 겪었다는 수고 표시 계급장인 주름살이 하나둘 생기게 되니 돌도 씹는 패기와 열정의 보랏빛 인생이 꺾여 잿빛 되어 서글프다.

제2의 탄생 시작 환갑을 넘어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숫자에 불과하여 노인도 비켜 간다고 위안도 하며 주위에서 그렇다고 하면 자신감이 생겨 뿌듯하고 행복하단다. “젊어 보인다” “늙어 보인다” 경계가 불분명하고 분수령인 예순 시기에는 남녀 간 공히 ‘어르신네’ 호칭이 듣기 거북하고 외톨이 뒷방 신세로 편을 갈라 왕따 취급. 한 번 더 부르면 짜증까지 추가한다. 품위 덩어리 선생님 ! 여사님 ! 점잖은 호칭 고프다. ‘할배’ ‘할매’도 손주가 불러주면 천사의 멜로디다. 칠순을 넘겨도 살이 피둥피둥하고 젊은이가 부러울 정도로 낙천적이고 활기에 넘치게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인생의 분수령이 되는 불혹에 못 미치는 나이에 허리가 굽고 어깨가 축 처져 행동도 삐딱하게 부정적이며 매사를 의심으로 겉늙게 사는 요지경 세상이다. 올바른 삶의 진로와 참 인생의 공식을 만나 혼과 철학이 담긴 준수한 삶이 도시나, 시골이나, 젊으나, 늙으나 순수한 초심으로 돌아간다.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러움 한 점 없이 살아가려는 다짐과 각오로 심신을 추스려 간다면 물질의 모자람이 해맑은 마음으로 꽉 찬 부자가 진짜 부자다. 인간의 본모습은 먹고살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고운 마음까지 넘치면 다 갑부다. 길고 굵게 사는 행복 바로 이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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