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의지 더 굳건히 다져 국제적 위상 강화

포항종합제철 사면 변경을 반대하는 시민 현수막.
◇회사 이름 바꾸려다 지역사회와 갈등.

2002년 3월 15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는 창사 이래 사용해 오던 회사 이름을 마침내 ‘주식회사 포스코‘ 로 바꾼다.

다음 순서에서 다루겠지만 사실 대한민국 어느 기업을 둘러봐도 포항제철(포스코)만큼 지역협력에 적극적인 기업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포스코는 50년, 반(半)세기를 제철소가 소재한 포항과 광양 지역사회와 동행하면서 불가피하게 갈등도 많았다. 바다 위에 제철소를 지어 시민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광양제철소와 달리 포항의 경우 크게 손꼽아 볼 수 있는 것 ‘갈등’ 사례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는다. 먼저 제철소건설에 따른 부지보상과 관련 철거주민 피해보상은 건설부와 포항시, 영일군 등 행정기관에서 했지만 당사자인 포항제철에게도 큰 과제와 부담이었다. 그리고 어업권피해보상과 송도백사장 유실에 따른 지역주민의 보상요구, 본사이전설 등 크고 작은 지역사회와의 갈등이 이어졌다,

이처럼 포항지역 각 특정 계층과 갈등 또는 민원과는 달리 회사 이름, 즉 사명을 바꿀 때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시민 정서 전반에 걸쳐 지역사회와 가장 깊고, 큰 갈등을 겪었다.

사명변경 전 포항종합제철 본사
1) 사명변경의 첫 시도

포항종합제철이라는 회사 이름을 바꾸려는 첫 시도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10월, 절대 권력의 박태준 회장이 전격적으로 퇴진한 데 이어 이듬해 1993년 주주총회에서 창업 1세대 임원들이 줄줄이 물러나자 이즈음부터 포항종합제철이라는 사명을 변경하려는 계획이 구체화된다.

당시 회사 측은 제철소가 포항과 광양으로 구분돼 있는 현실에서 광양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문제가 커 연말에 제작되는 회사 달력과 근무 수첩에 포스코를 사용하고 1994년 3월 정기주총에서 동의를 받을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10월 중순 포철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론화되자 포항향토청년회 등 사회단체들은 포철의 정체성과 지역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조직적인 반대활동을 펼쳤다.

이에 따라 1993년 10월 14일 열린 국회 상공자원위의 포철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갑작스러운 사명변경 등을 집중 추궁했다.

특히 민자당 박재홍 의원은 사명개정의 가장 큰 이유와 실익, 발상 경위를 따졌다. 또 사가(社歌)까지 굳이 바꾸려는 의도를 묻고 회사를 상대로 사명변경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반발에 휩싸인 포항제철은 결국 관련 계획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이후 각종 표기와 홍보에서 ‘포스코’를 대대적으로 확대 사용하게 된다.
송도해수욕장 피해보상 요구.
2) 그리고 마침내 사명변경 (2002년 3월 25일)

사면변경 1차 시도 후 9년이 흐른 2002년 3월 15일, 회사는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사명을 ㈜포스코로 변경하고 임원 임기 단축을 포함한 정관 일부 변경 등 4개 의안을 가결했다.

포항제철은 이에 따라 지난 68년 4월 1일 창립이래 34년간 사용해오던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대신 ‘주식회사 포스코’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된다.

지난 72년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2002년 주총에는 국내 기관투자가와 뉴욕은행, 신일본제철을 비롯 해외주주 등 280여명이 참석했다.

그 사이 회사는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이미 포스코(POSCO)라는 영문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고 1995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포스코센터를 완공하면서 포항 본사에 있던 상당부문의 기능을 서울로 옮겨갔다.

변경 당시 포항제철은 그동안 국내외 언론매체 광고를 통해 새 사명인 포스코를 폭넓게 인식시켜 왔다며 회사 이름 변경에 대해 언급했다.

유상부 회장은 “한때 종철(포항종합제철의 줄임말)이라고 불린 적이 있는가 하면 포스코가 포철의 벤처계열사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며 “이젠 포스코가 더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강조하며 지역사회의 반발을 무마하려 했다.

포스코의 사명변경은 국제적인 위상 강화에 부응하고 해외에서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1980년대에는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연이어 진행되면서 사명 변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그러나 포항지역사회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었다.

주총에서 사명변경을 공식화하기에 앞서 그해 1월 24일 서울 증권협회에서 열린 상반기 CEO포럼에 참석한 유상부 회장이 포항종합제철, 포항제철, 포철, 포스코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회사명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Pohang Iron & Steel Co.,Ltd)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한 ‘주식회사 포스코’로 통합키로 했다고 밝히자 포항향토청년회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 시민여론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내 주요 지점에 사명반대 현수막이 나붙고 반대집회도 열렸다.

가장 크게 반발했던 포항향청은 2월 26일 ‘포항제철 사명 변경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을 발표하고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또‘포철이 지금까지 지역민의 정서에 맞는 사명을 유지해왔으나 다시 포스코로 사명을 변경하려는 데 대해 포항제철을 소중하게 지킨다는 취지 아래 51만 포항시민과 함께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회사로고도 변화.
하지만 포스코는 3월 15일 정기주총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명을 포스코로 변경해 10여 년에 걸친 사명 변경 갈등이 마무리됐다.

후일 포항시가 발간한 시사(市史)에도 이때 포항제철의 사명변경을 지역사회 주요 갈등사례로 기록하고 있다.

포스코로 사명을 바꾼 후 포항의 출자사들도 포스코건설, 포스코ICT, 포스코강판, 포스코캠텍 등으로 회사명을 ‘포스(POS…)’로 바꾸는 등 현재의 ‘포스코 패밀리’라는 개념이 도입됐고 이를 계기로 가족처럼 한데 묶어 홍보개념도 전환돼 포스코신문이 창간되고 각 출자사에서 개별 출간되던 사보도 통합되기에 이른다.이한웅<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3)사가(社歌)에서도 포항종합제철 대신 ‘포스코’로

1고로 출선 기념으로 만들어 창립 40주년 때 가사 대대적 정비

1973년은 포항제철소 1고로의 출선이 예정된 해였다. 허허벌판에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모래바람이 심했던 포항제철소 전 조직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감대가 필요했다. 특히 고로 가동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해 4월 27일. 포스코는 6월 9일 1고로 첫 출선을 앞둔 두 달이 남지 않았을 때 포스코는 철강업계 최초로 사가(社歌)를 제정했다.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 사가 제창 모습.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노랫말을,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이 곡을 맡아 지구레코드에서 7인치 음반으로 제작됐다. ‘끓어라 용광로여 조국 근대화, 줄기차게 밀어가는…포항종합제철‘로 시작되는 전 3절로 이뤄진 사가는 그해 5월에 발간된 사내보 ‘쇳물’에 소개됐다. 사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끓어라 용광로여 조국근대화, 줄기차게 밀어가는 장엄한 심장/

겨레의 슬기와 의지를 모아, 통일과 중흥의 원동력 되자/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기적을 이룩하는 포항종합제철

‘2절’

녹아라 쇳물이여 조국산업의 성장을 다짐하는 뜨거운 동맥/

고도로 닦아낸 기술과 역량 우리의 자랑을 세계에 심자/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육대주로 비약하는 포항종합제철

‘3절’

보아라 해돋이를 푸른 영일만 쇠와 땀의 성지에 소망의 태양/

철강인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불타는 정열을 함께 사루자/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무궁하게 발전하는 포항종합제철.


가사에는 전 국민의 관심을 모으며 대역사를 진행하는 포항제철 임직원들의 사명감과 의지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렇게 제철소 조업현장에서 직원들과 애환을 같이해 왔던 포스코 사가는 창립 30주년을 맞은 1998년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편곡, 다시 녹음했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바리톤 고성현씨와 35명의 합창단이 노래했다. 이어 창립 40주년인 지난 2008년에 또 다시 재녹음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에는 기존 포항종합제철에서 포스코로 사명을 바꾼 상황을 반영해 해당 가사중 ‘포항종합제철’을 각각 1절 ‘우리의 포스코’, 2절 ‘세계의 포스코’, 3절 ‘영원한 포스코’로 각각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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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웅<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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