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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바다는 평온하면서도 거칠다. 때론 거센 풍랑을 일으켜 세상을 휘몰아친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잠한 수면은 야누스 얼굴과 진배없다. 어쩌면 그게 대양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청양고추 매운맛처럼 말이다.

아마도 구석기 시대의 사람은 통나무에 의지해 물길을 열었을 것이다. 최초의 배는 나뭇가지로 만든 틀 위에 가죽을 씌운 ‘코러클’이라 추정한다. 인류는 생존과 교역, 전쟁의 방편으로 이를 만들었으나, 이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척이 침몰했다. 그들은 인명과 물건을 구하고자 물속에 뛰어들었다.

영화 ‘타이타닉’은 첨단 로봇을 투입하여 해저 침몰선을 탐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칠흑 같은 어둠과 침전된 개흙을 헤치며 선실로 진입한 장비는 금고를 인양하는 데 성공한다. 루이 16세 시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84년간 물밑에 있던 철궤 안에는 펜던트를 걸친 누드화와 머리핀이 나왔을 뿐이다. 투자가들 항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그림의 주인공이라 주장하는 할머니가 나타난다.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뉴욕으로 떠나는 삼등실 화가와 미국 갑부와의 혼인을 위해 일등실에 승선한 처녀. 그때의 기억을 되뇌며 흐르는 애틋한 사랑이 얼개다. 선체가 동강나면서 아비규환 참상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1912년 북대서양에서 가라앉은 이 호화 여객선은 탑승자 2224명 중 1514명이 사망했다. 한데 선실 등급에 따라 사망률이 크게 차이가 났음이 밝혀졌다. 일등실 승객의 62퍼센트가 생존한 반면 삼등실 승객은 무려 75퍼센트가 사망했다.

영화에도 그런 설정이 엿보인다. 삼등실서 갑판으로 이어지는 계단 통로가 철문으로 차단돼 웅성대는 광경. 어린 딸의 물음에 엄마가 답한다. 일등실 승객이 먼저 구명보트에 탄 다음 우리가 올라야 한다고. 문득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연상됐다. 삼등실 남자가 죽고 일등실 여자가 살아남아 과거를 회상하는 구도는 통계상 수치로도 적절하다.

원희복의 논픽션 저서 ‘보물선 돈스코이호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에 의하면, 세계의 수역에 침몰한 선박은 대략 3백 만 척으로 추산되고, 일제 강점기 한반도 해역에 내려앉은 배는 290척 정도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수중 조사 필요성이 있는 곳은 216군데에 이른다.

한국의 남서해안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이기에 물밑 유물이 많을 것이다. 그중엔 금괴를 실었던 보물선도 있지 않으랴. 영화의 초반부 해중 탐찰 모습과 실제 인양 귀물의 고가 거래는 일확천금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돈스코이호 소문도 그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역사는 모험을 감수하는 선구자에 의해 진보해 왔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나 세계 일주를 이룬 마젤란의 항해는 삶의 지평을 넓힌 원동력. 쉽게 범접키 어려운 미지의 영역을 개척코자 하는 시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은 근대의 영웅이었다.

보물선 발굴은 성격상 은밀히 추진된다. 단적으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성패가 불확실한 사업. 대박 아니면 쪽박 양자택일 같은 로또 복권과 흡사하다. 자본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보안상의 필요와 알 권리의 충돌은 필연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 관련 회사의 주식은 폭등하고, 자칫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하려면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지 않을까. 위험한 투기가 아니라 정당한 투자로 유도하고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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