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여자가 남자를 떠민 것 같았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는 선로로,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터져 나오는 울음 사이로 여자는
남자가 발을 헛디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하기사 나는 사랑이나 탐욕 따위를
운명 앞에서 한 번도 떠밀어본 적 없으니,
여자는 불꽃 같은 여우털로 만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얼굴은 희고 손톱은 길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죄 많은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뜨거운 불을 목에 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감상> 여우털 목도리는 갈색이거나 붉은 색이기 때문에 불꽃이 연상됩니다. 하여 시인은 여자의 목에 뜨거운 불을 두르고 있다는 주된 이미지로 시를 전개합니다. 사랑이란 대상에게 옮기며 전달하는 뜨거운 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남자가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농락당한 마음은 불이 되어 타오릅니다.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불귀신)처럼. 죄 많은 여자로 보이지 않지만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욕망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사랑이나 탐욕 따위를 운명 앞에서 한 번이라도 떠밀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反問)하게 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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