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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인간은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렇기에 사회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쟁상태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따라서 전쟁이 아닌 만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선 개인의 이기심은 사회적 합의로 통제될 수밖에 없다. 한편 자기만족, 즉 개인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은 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그리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욕구가 과해 탐욕으로 흐를 경우,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이라는 식의 이기적 편향이 집단적으로 표출 될 경우,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지난 4년간 우리나라 유치원들에 대한 감사결과가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이들의 보육에 쓰여야 할 국가의 지원금이 어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무분별하게 유용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토록 분노하는 국민의 감정과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유치원 단체는 적반하장 식으로 오히려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유치원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비리 유치원 공개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국가가 담당해야 할 보육을 개인 재산을 들여가면서까지 역할 분담을 해줬더니 그 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와서 비리의 온상으로 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단체의 명예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비리 유치원을 직접 나서서 공개하고 다른 정상적인 유치원들이 도매금으로 같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적발된 유치원들의 부정행위가 마치 전체 유치원의 비리인 양 스스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올바른 유치원들의 명예조차 실추시키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심지어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자신들의 허물엔 눈감은 채 비리 교육공무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면서 감독기관인 정부부처의 부도덕성을 문제 삼는 일종의 물타기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분노하는 학부모를 상대로 폐원을 무기로 한 단체행동도 불사할 태세다. 집단의 이기를 위해서라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 기준은 깡그리 무시해도 좋다는 자세다. 그런데 이 같은 자세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이기적 편향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정치집단이다. 소속의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명백한 의혹 제기조차 너무도 쉽게 상대당의 음모론쯤으로 치부되기가 일쑤인 곳이 정치판이다. 의혹이 있으면 분명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일을 일단 반대파의 음해시도로 무조건 물타기 한 뒤 잘못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뒤늦게 개인의 일탈행위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며 사과 한마디나 반성의 기미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잘못에 대한 무거운 책임의식은 없고 이기적인 조직방어에 대한 투철한 동지의식만 있을 뿐이다. 최근 어느 공기업에 대한 채용비리에는 목청 높여 성토하면서도 자신들의 소속의원이 연루된 또 다른 공기업의 채용비리는 그저 의혹 제기에 지나지 않는 음모일 뿐이라는 모순된 논리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사회제도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집단이 이럴진대 다른 사회집단의 이기적 편향성을 지적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절로 든다.

잘못을 잘못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조직보호라는 명목으로 본질을 흐리고자 하는 시도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질곡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생존본능만 도드라지게 체화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존을 모색할 때다. 그러기에 집단 이기주의는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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