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넘어
골골이 뻗히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느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역구 풀 밑 대어오던
내 사랑의 보 도랑물
이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메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엣비슥히 비기어 누워
나도 이제는 잠이나 들까




<감상> 황혼기에 접어든 시인의 쓸쓸한 풍경이 잘 담겨 있습니다. 쓰디 쓴 나날 속에서도 사랑은 여뀌풀 밑 대어 오던 도랑물처럼 제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그만큼 사랑은 시름으로 가득 찬 삶을 버티는 위안이 되어주었고, 이제는 사랑도 물처럼 내버려두고자 하는 초탈에 이르고 맙니다. 딸네 집에 가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저승에 갈 노자도 없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산 그림자를 말아서 덮고 엣비슥히(엇비슥하게) 기대어 눕는 것은, 현재의 마음 상태를 지키고자 하는 수세적(守勢的) 방어 자세가 아닐까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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