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가장 잘 쓰고 학문이 가장 뛰어났으며 전투에도 가장 강한 황제였다” 마오쩌둥의 후한 광무제 유수에 대한 칭송이다.

광무제 유수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이유제강(以柔制强)’ 정치로 천하를 평정하고 황제가 된 명군이었다. 광무제가 금의환향, 일가친척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백모가 광무제를 가리키면서 “평소 사람과 만날 때도 별로 위엄스럽지 않고 겸손하기만 했는데 어찌 황제까지 됐을꼬?” 사람은 겉모양만 보고는 모른다는 투로 말했다. “백모님 말씀이 옳습니다. 앞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것도 역시 부드럽게 할 생각입니다” 광무제의 대답이었다.

황제가 된 후 자신의 형을 살해한 음모에 가담한 자까지도 투항해 오면 “큰일을 이루려면 작은 원한은 잊어야 한다”면서 용서해 주었다. 또 투항해 온 지도자들에게도 관대했다. “그대들은 과거에 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가는 곳 마다 노인과 부녀자들을 살육, 민가를 초토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세 가지 훌륭한 점이 있다. 첫째, 마을을 파괴하고 각지를 휩쓸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처자식을 버리지 않았다. 둘째, 유씨 종실을 군주로 모셨으며 셋째, 자신들이 군주를 세웠다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군주의 목을 베고 투항했지만 그대들은 군주의 목을 베지 않고 그대로 넘겨주었다.”면서 투항한 자들에게 처자식과 함께 낙양에서 살 수 있도록 집과 땅을 하사했다.

광무제의 유도(柔道)정치는 항상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 격려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단을 공격, 왕망을 제거하고 왕망의 진중에서 자신의 부하들 중에 왕망과 내통한 서찰을 발견하고 자신을 비방한 수천 통의 문서를 찾아냈지만 광무제는 내용도 보지 않고 장군들을 소집, 그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그 동안 잠 못 이루던 자들은 이제 마음 놓아도 되겠지” 광무제의 도량이 돋보인 황제의 일성이었다.

중국 역사에 개국 공신들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비일비재하지만 후한 개국공신들은 하나같이 천수를 다했다. 치국 치인의 으뜸가는 통치술은 광무제가 보인 부드러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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