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원조 꽃미남에 반항적 이미지

▲ 배우 신성일이 폐암으로 4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신성일 씨의 모습.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별이 졌다.

4일 새벽 타계한 한국 영화의 대부 강신성일(81·이하 신성일) 씨는 한국 영화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한 ‘영원한 스타’였다.

신성일은 지난 2008년부터 ‘별의 고장’ 경북 영천시 괴연동에 금강송으로 한옥을 지어 전입신고 하고 영천사람이 되어 살아왔다.

영화가 삶 전부였던 신성일은 깊어가는 가을에 낙엽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수많은 팬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 세상과 이별했다.

강씨는 암으로 투병을 하면서도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 레드카펫을 밟으며 멋진 포즈를 취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래서 팬들은 강씨의 투병 사실도 잊고 있다가 졸지에 비보를 듣게 됐다.

원조 꽃미남으로 숱한 여성팬들의 우상이었던 강씨가 영화처럼 홀연히 떠나갔다.

수많은 사람을 울렸던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주연을 맡았던 강씨는 이제 저 하늘에 있는 ‘별들의 고향’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196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500편이 넘는 영화의 주연을 맡았으며, 한국 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 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했다.

영화는 현실보다 아름답다. 배경음악이 있어서다. 그가 영화처럼 빛나는 것도 그 배경음악 같은 삶 덕분이다.

대구 출생이며, 어렸을 때는 영덕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60년 ‘로맨스 빠빠’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맨발의 청춘’을 비롯한 수편의 청춘 멜로 영화에 엄앵란과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시절 신성일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 후 1964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과 결혼했다.

인기영화 주연배우로 열연하면서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1963년~1973년 )과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공로상(2017년) 등 30여 회의 영화 관련 상을 휩쓸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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