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굵은 인생을 살아낸 경상도 사나이 신성일이 떠난 아침, 그가 열연했던 영화를 다시 돌려 봤다.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 군” “꼭, 안아 주세요. 여자란 참 이상해요. 남자에 의해서 잘잘못이 가려져요”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보면서 ‘이제 이런 인물은 더 이상 나올 수 없지’ 혼잣말을 되뇌었다.

영화배우 신성일, 강신성일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처럼 지상의 별 하나(星一)가 졌다. 영화 600여 편에 출연했고, 그 중 506편에서 주연을 맡은 위대한 영화배우 신성일은 경북과 대구가 낳은 대 스타다. 영화배우로 데뷔할 때 신상옥 감독이 양아들이라며 이름을 ‘신성일’로 했다는데, 그의 본명은 ‘강신영’이다. 강신영의 부친은 경북 영덕이 고향이다. 신성일이 태어난 곳은 대구지만 유년기를 영덕에서 보냈다. 영덕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가서 경북고등학교에 다니고 다시 서울로 가서 건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신성일은 포항의 향토 기업 삼일가족을 일군 고 강신우 회장의 동생이자 현 강석호 국회의원의 삼촌이다. 여기에다 신성일은 말년에 영천시 괴연동 채약산 자락에 ‘성일가(星一家)’를 짓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 했지만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포도가 유명한 영천에서 ‘성일가 포도주’ 와이너리를 만들어 세계적인 와인을 생산하고, 그와 부인 엄앵란 씨가 소장하고 있는 영화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 관광 자원화하는 영화박물관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끝내 꿈을 다 이루지 못했다.

신성일은 그의 말대로 ‘개나 소나 다 하는’ 국회의원에 도전, 2000년 대구 동구에서 금배지를 달기도 했다. 정치에 발을 들인 후 옥살이를 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 영화사의 인물 중 최고의 인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영화배우로 최고의 성취를 이뤘을 뿐 아니라 그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원 없이 누린 큰 별이다.

지난달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이 아직 생생한데 4일 새벽 숨졌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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