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의 1대 1 결투서 승리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고 개선했다. 그것은 트로이 사람들을 한껏 능욕하는 행위였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갔다.

아들을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피의 복수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프리아모스가 제 발로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것은 아들의 시신이나마 거두기 위한 소망에서였다. 프리아모스는 변장을 하고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몰래 들어가 아킬레우스를 만났다.

아킬레우스에게 가까이 다가간 프리아모스는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애원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년의 문턱에 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동정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못 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발아래 쓰러져 흐느껴 울었다. 아킬레우스도 프리아모스를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별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울음을 그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를 일으켜 세우면서 위로했다.

“불쌍한 분이시여. 그대의 용감한 아들을 죽인 사람의 눈으로 혼자서 찾아오시다니 아무리 괴롭히더라도 우리의 슬픔을 마음속에 누워 있게 내버려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위로를 마친 아킬레우스는 결국 헥토르의 시신을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아킬레우스의 연민의 정은 자신을 보다 성숙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했다. 진정한 영웅은 힘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며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다. 적도 이해할 수 있는 마당에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정도야 이해 못 할 일이 뭐 있겠나. 생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 원수처럼 물고 뜯는 사이라면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함께 우는 장면을 떠올려 봐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독방에 갇힌 과거 정부 사람들의 고통에 연민을 못 느낄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