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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나이가 들면서 말이나 글이나 복잡한 설명을 가급적 피합니다. 논문을 쓰거나 강의나 대화를 할 때도 그렇고, 책을 읽을 때도 그렇습니다. 어려운 말로 사물의 이치를 파헤치는 말이나 글들을 가급적, 의식, 무의식적으로, 멀리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진리의 문(門)’은 어려운 설명의 안내를 받아야만 열리는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그 어렵고 복잡한 설명 자체가 진리나 되는 줄로도 알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다 헛된 일이었습니다. 어렵게. 혼자 아는 일은 아무런 공(功)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 드니 알겠습니다.

독서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목적, 효용, 방법 등에 대해서 많이 묻습니다. 최근에는 ‘독서 역량 키우기’에 대해서 한마디 하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젊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합니다. 이를테면, “독서 역량을 배양하려면 글쓰기를 병행하라”, 그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물론 글쓰기를 어떤 방식으로 몸에 붙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겪은 대로 몇 마디 덧붙입니다. 책 속의 내용에 매이지 말고 그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몇 자씩 적어보라고 권합니다. 의무감을 가지고 매일 정해진 분량을 채워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독서 역량을 키우는 데는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 둘만 소개합니다.

“천행으로 하늘은 내게 밝은 눈을 주시어 고희의 나이에도 여전히 행간이 촘촘한 책을 읽게 하셨다. 천행으로 내게 손을 내리시어 비록 고희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잔글씨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두고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겠지. 하늘은 다행스럽게도 내게 평생토록 속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한창 나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친척이나 손님의 왕래에 시달리지 않고 오직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탁오, ‘분서’’

“말년에, (...)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고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유서 깊은 한 독일 대학의 교훈이 진리, 자유, 그리고 고독이라고. 진리와 자유란 모든 대학의 모토이다. 그러니 특이한 것은 고독일 수밖에 없다. (…) 공부를 하려는 자라면 모름지기 집과 부엌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고독의 요체이다. 그 차가움을 버티고자 하는 사람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고독은 곧 대학의 이념이 요구하는 장소이다. 뒤에 확인해보니, 그 대학의 교훈에 고독은 없었다. 아마도 착각이었을 것이나, (…) 대학의 교훈 따위 있건 없건 아무래도 무관하다. 중요한 것은 향기이지 울타리 같은 것이 아니니까. 그 향기에 나는 눈이 멀었고 그래서 행복했다.”‘서영채, ‘고 김윤식 선생님께’, 한국일보’

모르겠습니다. ‘평생토록 속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이 과연 다행스러운 것인지, 대학의 이념이 굳이 고독을 터전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인간과 절연된 채 전념하는 독서가 후일 ‘함께 하는 인간의 삶’에 큰 공을 세울 것이라는 건 의심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이탁오의 글에는 이어서 “책을 펴면 곧 인간이 보이는 것이 더 큰 천행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독서는 인간을 알기 위한 것’이라는 것(독서의 명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아는 것이 독서의 목적입니다. 인간을 알아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가 키워야 할 독서 역량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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