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人文)의 무능을 인문(人紋)의 축복으로 전복하는, 인문좌파적 실천 연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위안과 지침의 서.

그 진가가 알려지자마자 절판돼 많은 이들의 애를 태웠던 전설의 책.

이 땅에서 이 땅의 언어로 고군분투하며, 부지런한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사유를 담금질 해온 철학자 김영민의 역작 ‘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의 신판이 최측의농간의 첫 번째 철학서로 출간된다.

‘동무’라는 새로운 관계·관계형식에 대한 철학적 상상을 통해 우리의 물적·정신적 토대를 구성하는 체제의 내·외부를 성찰하고 전복하는, 실천하는 인문연대의 조건과 가능성에 관한 한 철학자의 치열한 사유 여로가 담긴 이 책 ‘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은, ‘장미와 주판’이라는 이름의 인문학 공동체를 꾸린 바 있는 저자가 그곳에서 15년 이상 공부하고 실천하며 겪은 일을 토대로 집필한 기록이다.

최측의농간에서 초판 출간 1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신판을 통해 저자는 초판의 일부 오기와 구성을 바로잡고 초판에 대한 비판적 후기를 겸한 새로운 서문과 함께 초판 출간 이후 확장 및 심화된 사유의 한 기록으로서 ‘보론’에 해당하는 ‘존재의 개입과 신생의 윤리’를 수록했다.

철학자 김영민. 그 사유의 독창성과 깊이, 그것을 엮어내는 놀라운 글쓰기를 통해 이미 독보적 인문 실천의 경지를 열어왔던 그는, 그의 저서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읽어본 사람은 없다는 풍문이 공공연할 만큼 이 땅의 수많은 인문학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사람의 무늬’(人紋)에 바탕하지 않은 인문(人文)은 공허하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냉철하게 꿈꾸는 연대는 ‘사람의 무늬’에 바탕한 연대이다. 그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서가 아니라 ‘지는 싸움’이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투쟁한다. 이런 신념이 ‘동무론’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철학자로서의 윤리이며, 새로운 인문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타의 사상가들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놓인 환경, 스스로의 선입견, 스스로 감내했던 경험이 환기하는 기억의 파편들과 대결한다. ‘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은 그 일진일퇴의 치열한 대결의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이 책의 전편을 관통하는 개념인 ‘동무’는 호의에서 시작하지만, 상대의 삶과 신념에 대한 신뢰의 시험을 통과한 뒤 보다 깊은 차원의 교감이 이뤄질 때 형성되는 만남의 새로운 꼴이며 형식이다. ‘인문연대의 미래형식’이란 명명으로 그는 그렇게 만난 ‘동무’들이 홀로선 개별자로서 인문적 삶의 실천으로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간결히 정식화했다.

그가 말하는 ‘인문’은 ‘무능’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내포하는, 자본제적 삶의 양식 속에서는 보다 철저히 ‘무능’한 것으로 배척당하는 것으로서의 인문이다. 그는 인문의 ‘무능’이야말로 체계화된 유능의 연약한 속살을 파고들어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적었다. 이것이 그가 이 책을 통해 급진적으로 재발견해낸 ‘무능’한 것으로서의 인문의 역설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며 ‘동무’들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동력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더욱 냉혹해진 자본제적 현실 속에서 보다 절실한 빛을 발하게 된 ‘동무론’을 일상생활의 혁명을 위한 실천지침서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사유의 파편들을 비선형적으로 그러모아놓은 듯한 독창적 글쓰기의 한 전범으로서 또한 주목할 만하다. 책 속에서 그는 체계적 글쓰기가 빠지기 쉬운 자폐성의 함정에 대한 거부감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삶의 이치에 맞는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쉼 없이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동무론’은 이런 그의 견해가 전면적으로 투영된 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쓴다는 행위가 어떻게 그 자체 하나의 급진적 실천이 될 수 있는지를 보인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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