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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11. 경주 선도산 자락 서악서원

삼국통일 대업 이룬 영웅 김유신의 호령소리 들리는 듯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등록일 2018년11월07일 17시39분  
서악서원 전경
경주시 서쪽 관문인 서악동에는 예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서악’으로 중요시 한 높이 309m의 나지막한 선도산이 있다.

이 산 정상에는 높이 7m의 마애삼존불이 있고 자락에는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5기의 왕릉과 서악리삼층석탑 등 다양한 문화재가 밀집돼 있다.

태종무열왕릉 앞 국도변에서 조금 들어가다 보면 선도산 자락에 있는 서악마을 입구에 경상북도기념물 제19호인 서악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악서원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사액서원이지만, 특이하게도 개국공 김유신, 문창후 최치원, 홍유후 설총 등 신라의 인물들을 모신 사원이다.

특히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경주에서 옥산서원과 함께 단 두 곳만이 존속했을 만큼 유서 깊은 서원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의 원형이 잘 갖춰져 있어 최근에는 전통과 현대문화가 접목하는 고품격 문화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문화재 활용의 대표적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보희·문희의 꿈 이야기가 서려 있는 선도산과 그 인근에 밀집돼 있는 다양한 문화재와 함께 경주 관광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서악서원을 둘러봤다.

△서원 철폐령에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

서악서원은 신라 삼국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군과 신라 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1561년(명종 16)에 경주 부윤 이정이 김유신 장군을 후세에 길이 새기고자 건립했는데, 당시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따라 퇴계 선생과 협의해 설총, 최치원의 위패도 1563년에 함께 모시게 됐다.
현판
선도산 아래 ‘사우’를 세운 것이 시초로, 퇴계 선생의 친필 편액을 달았는데 ‘서악정사’라는 이름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건물이 소실됐지만, 1600년(선조 33년)에 부윤 이시발이 옛터에 ‘초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602년 현 위치로 옮겨 사당을 중건했고, 1610년(광해군2)에 부윤 최기가 강당과 재사, 전사청과 장서각을 지었다. 1623년(인조1년) 부윤 여우길, 진사 최동언 등이 조정에 사액을 청해, ‘서악서원’으로 사액됐다.

현판 글씨는 당시 명필인 서예가 원진해가 썼다.

1646년에 부윤 이민환이 ‘영귀루’를 중건했으며, 그 후 고종 때에 몇 차례 중수가 이뤄졌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인 서악서원은 현재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문집 몇 권이 있다.

△건물 원형이 잘 갖춰진 유서 깊은 서원.

서악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묘우와 교육 장소인 동시에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하던 ‘조설헌’이라는 강당이 있다.
서악서원 시습당
또한 동재·서재로 유생들의 숙식 장소로 사용하던 ‘시습당’과 ‘절차헌’,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전사청’, 그리고 ‘영귀루’라는 누각이 조성돼 있다. 건물 배치는 남동의 중심축 상에 외삼문인 도동문, 영귀루, 강당인 시습당, 내삼문, 사당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강당 앞에 좌우로 동재?서재를 배치해 서원건축의 전형적인 ‘전학후묘’, ‘전재후당’의 배치구조를 하고 있다.
서악서원 마당
부속 건물로는 강당의 왼쪽에 ‘제기고’, 사당 앞 왼쪽에 ‘전사청’이 있고, ‘고직사’는 중심축을 비켜 서재의 뒤쪽에 위치한다. 고직사 일곽에 따로 낸 통행문이 있다. 그밖에 강당 앞에는 ‘정료대’ 1쌍이 좌우로 마주하고 있고, 정문을 들어와 영귀루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편으로 구암 이정 선생의 공적을 기린 ‘부윤구암선생비각’이 있다.

이 가운데 공자의 ‘도’가 중국으로부터 동쪽인 이곳에 왔다는 뜻의 ‘도동문’은 평삼문 형식의 외삼문이다.

원생의 휴식공간인 영귀루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좌우에 ‘판벽’을 드리우고 사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시습당은 강학공간의 중심인 강당으로, 앞퇴를 둔 중당협실형의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우물마루(귀틀마루)이고 양쪽 협실은 각 1칸짜리 온돌방인데, 이 협실은 모두 교수진이 거처하던 곳이다.

‘시습’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배워서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말로 ‘기쁜 마음으로 배워서 익힌다’는 뜻이다.

강당 바깥 정면에 ‘서악서원’ 편액이 걸렸는데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인 경내 다른 편액과 달리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이다.
서악서원 영귀루
서악서원 영귀루
원생이 유숙하는 장소인 동재 ·서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집 이다. 강당인 시습당에서 영귀루 쪽을 향할 때 차례로 온돌방 2칸, 대청 2칸, 온돌방 1칸으로 구성돼 있다.

동재는 ‘진수재’, 서재는 ‘성경재’인데, 각각‘덕업으로 나아가고 학문을 닦는다’와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당은 제향공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전후퇴가 없다. 사당 안에 개국공 김유신을 주벽으로 좌측에 문창후 최치원, 우측에 홍유후 설총의 위패를 모셨다. 이밖에 내삼문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신문’으로 평삼문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서원의 관리사인 고직사는 정면 4칸의 본채와 역시 4칸의 행랑채, 그리고 창고로 돼 있다. 현재 창고는 고택 체험용 숙박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정료대는 밤에 불을 밝히는 시설인데 좌우 대칭으로 1쌍이 마주 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사찰의 석등 부재와도 유사한데 두 개의 시대 차이가 분명히 느껴진다.

서악서원에는 서악정사를 처음 건립했던 부윤 구암 이정의 공적을 기리는 비각이 있는데, 비각 안 보 위에는 코끼리로 보이기도 하고 돼지로 보이기도 하는 조각상이 매우 이채롭다.

△지역민과 가까워진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최근 (사)신라문화원이 다소 미흡했던 시설물을 수리, 정비해 고택숙박은 물론 국악공연 등 문화재 활용을 통한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하면서, 지역 인성교육의 대표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살아 숨쉬는 서원 체험
특히 2014년부터는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후원하는‘문화재 생생프로그램’과‘살아 숨 쉬는 서원 활용 사업’을 상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숙박객은 물론 일반 참가자들에게도 경주만의 특색 있는 체험 거리를 제공하고 활용을 통한 문화재 보존정책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첫째, 둘째 토요일 열리는 ‘살아 숨 쉬는 서원’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서악서원에서 선비복으로 갈아입고 전통 다례예법, 죽궁, 신라스토리투어를 한다. 이어 저녁에는 지역 주민들의 하모니카 연주와 국악 가수가 진행하는 ‘한시(漢詩)데이트’로 천년고도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고택음악회가 열린다.
고택음악회
고택음악회 뒤에는 인생의 목표를 적은 백등에 불을 밝혀 무열왕릉 달빛트레킹을 하면서 경주만의 특별한 추억을 남긴다.
생생문화재
이밖에 셋째 ‘생생 문화재’, 넷째 ‘신라달빛기행’ 등 매주 토요일마다 서악서원에서는 다양한 테마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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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환 기자

    • 황기환 기자
  •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