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열예닐곱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이제 겨우 막 첫꽃 피는 오이넝쿨만한 여학생에게 마음의 닷 마지기 땅을 빼앗기어 허둥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다.

어쩌다 말도 없이 그앨 만나면 내 안에 작대기로 버티어 놓은 허공이 바르르르르 떨리곤 하였는데

서른 넘어 이곳 한적한, 한적한 곳에 와서 그래도는 차분해진 시선을 한 올씩 가다듬고 있는데 눈길 곁으로 포르르르르 멧새가 날았다.

이마 위로, 외따로 뻗은, 멧새가 앉았다 간 저,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차마 아주 멈추기는 싫여 끝내는 자기 속으로 불러들여 속으로 흔들리는 저것이 그때의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외따로 뻗어서 가늘디가늘은, 지금도 여전히 가늘게는 흔들리어 가끔 만나지는 가슴 밝은 여자들에게는 한없이 휘어지고 싶은 저 저 저 저 심사가 여전히 내 마음은 아닐까.

아주 꺾어지진 않을 만큼만 바람아.
이 위에 앉아라 앉아라 / 어디까지 가는 바람이냐.
영혼은 저 멧새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같이
가늘게 떨어서 바람아
어여 이 위에 앉아라. / 앉아라.





<감상>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서른 넘어 오늘 한적한 곳에 와서 멧새가 앉았다 날아가는 나뭇가지를 보고 떠올리는 장면이다. 그 때의 감정처럼 한없이 휘어지고 싶거나 꺾어지지 않을 만큼만 느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심사야 서른이 아닌 오십, 육십, 칠십이 되어서도 오지 않을까. 나뭇가지가 한 번 꺾어지면 회복되지 않고 탈이 생기는 법. 그래서 내 안에 작대기로 버티어 놓은 허공, 곧 마음의 중심이 필요한 것이다. 가늘게 떨기만 해도 좋을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나가는 바람에게 부탁을 한 번 해 보자.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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