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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안전과 주거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주거참사 현장에 때로 가보게 된다. 며칠 전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에 갔다. 5시간 가까이 있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무도 쓸쓸한 모습이다.

큼지막한 검은 차가 들어오고 모두 다섯 사람이 내렸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꽃과 음식물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묵념을 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같이 간 청년이 알아보니까 일본인들이라 한다. 일본인이 종로 고시원에 거주하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찾아왔다. 대사관 직원들과 일본인들은 자국민이 한국의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화마에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 주거 현실의 민낯을 마주하고 경악하지 않았을까 싶다.

행인 두 사람 가운데 여성 분 한 분이 “사고 나면 가난한 사람만 죽는다니까...”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경제의 불평등이 생명의 불평등, 안전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체념하고 살아야만 하는가.

사람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내 목숨이 소중하면 네 목숨도 소중하고 네 목숨이 소중하면 내 목숨도 소중하다. 일곱 사람이나 목숨을 잃고 열한 사람이나 다쳤는데 찾아오는 시민들이 이처럼 적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더 큰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빈소도 못 차린 사람이 여럿인 걸 보면 마음이 더욱 무겁다. 가족이 없거나 내왕하는 사람이 없는 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의 강퍅함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살아 있을 때도 쓸쓸하고 죽은 뒤에도 쓸쓸한 삶 누가 함께 해야 하나.

이번 참사를 두고 정치권이 보이는 반응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떤 정치인은 겨울철은 사고가 많이 나니까 경각심이 필요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소방서가 잘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잘못해서 참사가 났다는 반응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게 정치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정당들이 꼭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누가 칭찬하지 않겠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 향상과 행복 증진을 위한 법을 만들고 예산안을 마련한다면 누가 국회의원을 존중하지 않겠는가? 예부터 ‘정치의 본령은 국리민복’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지 않을 때 정치권과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법만 만든다.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법률은 초스피드로 만들어 낸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법안 발의를 많이 한다. 여러 의원 서명을 받아 한 의원이 대표 발의한다. 법안을 내는 사람은 통과를 꿈꾸는지 모르지만 제안된 법률안은 대부분 사장되어 버린다. 아까운 나랏돈만 축내고 마는 것이다.

고시원은 사람 살자고 만든 곳이 아니다. 우선 좁고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 참사가 난 종로 고시원은 42평에 26명이 살았다. 인화성 높은 칸막이로 연결된 닭장 같은 곳에서 산다. 무엇보다도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안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스프링클러를 예외 없이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설치비용을 국고로 지원하는 법률이 제정하라.

지하방·옥탑·고시원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지옥고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로드맵을 만들고 지옥고 거주자들 모두가 공공임대주택에 우선적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 하라고 대통령 뽑아주고 국회의원 뽑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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