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앵무새 부총리’가 화제였다.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세금이 비싸면 집값 싼 곳으로 이사가라”고 한 대통령의 말을 복창, 소신 없는 ‘앵무새 부총리’라는 비난을 샀다. 프랑스 혁명에 불을 지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어라’라고 한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앙투아네트를 떠올리게 한 어처구니없는 복창이었다.

경제팀이 잘 화합하고 경제 부총리가 명쾌하게 지휘권을 쥐었던 박정희 대통령 때 국정운용 효율성이 최고조로 발휘됐다. 당시 경제각료 팀장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었다. 불도저형 장기영, 송곳형 김학렬, 재사형 남덕우 등 그 때의 부총리들은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금상첨화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과 뒷받침까지 가세,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스스로 ‘한국의 에르하르트’라 자처한 ‘왕초’ 장기영의 기발한 착상, 불퇴전 추진력의 기인으로 통했던 ‘쓰루(鶴·권력자)’ 김학렬의 예리한 판단력, ‘너구리’ 남덕우의 논리정연한 설득력 등이 경제팀을 원만하고 조화롭게 이끌어 한국경제의 중흥을 이뤘다.

부총리의 리더십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부터다. 대대적인 기구개편을 하면서 금가기 시작했다. YS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하고, DJ 정부는 재정경제원을 재경부로 개편했다. 이 같은 조직개편 과정에서 예산권, 금융감독권, 재벌정책권을 상실한 경제부총리는 말이 부총리지 허울뿐인 좌의정으로 추락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부처 차원의 조직개편은 없었지만 각종 위원회 설치, 청와대 정책실 강화, 386 정치실세들의 입김 등 사면초가로 포위된 부총리의 입지는 더욱 위축됐다. 경제 수장으로서 부총리의 리더십이 실종, 정책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팀 플레이도 지리멸렬, 정책의 혼선과 혼란이 빚어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의 한 언론인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위험은 정책마비다”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김&장(김동연 경제부총리·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투톱의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부총리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비쳤다. 새 부총리가 ‘앵무새 부총리’ 소리 안 들으려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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