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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상] 박해동 소설 '봄'

2018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8년11월15일 18시25분  
김제정作
분명 세상의 모든 것들을 향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었다. 검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향수를 뿌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샴푸로 머리만 감아도 좋은 냄새가 났으니까. 껍질 벗긴 양파처럼 하얀 목덜미, 잘록한 허리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났던 날씬한 다리, 유난히 가늘었던 발목에 반하는 남자들도 상당했다.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의 증거가 여기 있다. 거울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여자의 눈이 깜빡거리고 있다. 흐려진 눈동자만큼 이제 세상도 뿌옇게 보인다. 이마와 눈가의 주름, 뽀얗기만 했던 뺨을 뒤덮은 갖가지 얼룩들, 염색을 했지만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부스스해진 머리,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은근한 냄새까지. 거울 속 늙은이에게서 한때 아름다웠던 소녀를 찾아내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퀭한 눈을 가진 거울 속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 열린 창문으로 꽃잎이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와 머리 위에 앉는다. 그 작고 부드러운 꽃잎을 손에 쥐어 코끝에 가져다 댄다. 봄 냄새가 난다. 쭈글쭈글해진 피부만큼 감정도 메말라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감정은 여전히 꽃잎처럼 촉촉하기만 해서 화가 난다. 나는 동그란 손거울을 내려놓고 곰을 바라보았다.

곰은 요양보호사로 내가 몇 달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부터 하루에 3시간씩 나를 돌봐주러 오고 있다. 큰 얼굴에 작은 들창코가 어쩐지 잘못 만들어진 인형 같은 인상을 준다. 걸을 때마다 실룩거리는 펑퍼짐한 엉덩이와 두툼한 허리만 보면 영락없는 곰이지만. 나는 요즘 기억력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그녀를 은숙이라고 불렀다가 은주라고 불렀다가 이제는 그냥 곰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처음 내가 곰이라고 불렀을 때는 장밋빛 볼을 씰룩거리며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투덜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자 더 이상 나무라지 않는다. 곰이 하는 일은 내 몸을 청결하게 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때때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덕분에 점심은 늘 곰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순한 양처럼 그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맛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까다롭게 군다. 처음부터 “너무 매워도 안 되고 짜도 안 되고 싱거워도 안 되고 맛이 없어도 안 돼.”라고 못을 박아두었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씹던 것을 도로 뱉어내기도 하니까 곰의 입장에서는 아주 고약한 고객인 셈이다. 나는 그녀가 와 있을 때는 의도적으로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하는 편이다. 느닷없이 터진 셔츠 솔기를 내밀며 꿰매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는 곰의 옆에서 알짱거리며 창문이 더럽다는 둥, TV 화면이 먼지로 뿌옇다는 둥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펑퍼짐하고 볼품없는 바지를 입고 나타난 곰은 오늘도 집을 통째로 탈탈 털어낼 기세로 청소에 열중해 있다. 지금은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욕조를 박박 문질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병원 좀 데려다줘.”
“경주 씨 어디 아파?”
“지난밤에 좀 아팠지. 지금은 괜찮아. 병원에 가려는 건 당뇨약이 다 떨어졌어.”

그녀가 고무장갑을 벗고 서둘러 욕실에서 나왔다. 마치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당뇨약을 넣어두는 서랍장을 열어본다. “진짜 아픈데 없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곰은 가슴 쪽에 얼룩이 묻은 내 옷을 벗긴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머리를 빗기고 병원에 갈 준비를 서두른다.

“잠깐만 기다려 줘.”

나를 소파에 앉혀두고 곰이 자신의 가방을 열고 화장품 파우치를 꺼낸다. 콤팩트를 꺼내고 거울을 보며 요란하게 화장을 고치기 시작한다. 마스카라를 꺼내 속눈썹도 치켜 올리고 마지막으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른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걸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괜히 심술이 나서 나는 방석을 집어던지며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냐고 짜증을 냈다.

“됐어.”

곰이 헤실거리며 화장품 파우치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만큼 짜증을 내도 그녀가 화를 내는 법은 거의 없다. 막내라더니 막내라서 그런가보다. 운전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내 쪽에 신경을 써준다. 나는 그녀의 이런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도 나 두고 혼자가면 안 돼.”

병원 로비에서 접수를 하고 돌아온 곰이 다시 오른팔을 붙들고 말한다. 언젠가 함께 병원에 왔다가 진료가 끝나고 곰이 약을 타러간 사이 내가 혼자서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곰은 종종 이런 식으로 나를 놀린다. 사실 그때는 정말 곰과 함께 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혼자 돌아왔었다.

“또 그 소리.”
“아, 알았어.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잡지나 읽어야겠네.”

곰이 다리를 꼬고 앉아 탁자 아래에서 잡지 한권을 꺼내 펄럭펄럭 넘긴다. 한동안 진지하게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좁은 복도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러 가는 거다. 다정하게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을 그녀의 휴대폰에서 본적이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남자친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둘이 만나면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보았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그래요.” 그녀의 뻔한 대답은 나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 작은 개인병원에 단골손님이다. 다른 병원들도 다 그렇겠지만 이곳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러모로 편리해서 사람을 감동시킨다. 의자는 앉으면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푹신하고 티브이는 만성적인 고독에 지친 영혼들을 위해 계속해서 적당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병원 한쪽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 자판기도 있다.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음껏 마실 수가 있다. 당뇨환자든 고혈압 환자든 알레르기 환자든 상관없이. 노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커피를 뽑아들고 소파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동네병원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늙은이들이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얼마만큼 기다려야하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랫동안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상대하며 온순해졌고 무력해졌고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이제 그들은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무료함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말상대가 되어줄 누군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사건들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 말이다. 몇 번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죄다 낯선 사람들뿐이다. 얼굴에 잔뜩 검버섯이 올라온 늙은 여자가 진료실에서 나오는 게 보인다. 분명 안면이 있는 여자지만 순간적으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자는 나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물리치료실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쩌면 그 여자를 안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착각인지도 모른다. 어디보자. 다른 누군가 있을 거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 말이다. 시선을 돌려 두리번거리는데 널스 스테이션 쪽에서 어린 간호사가 혈당측정기를 들고 다가온다. “할머니, 혈당 체크 할게요.” 한 손에 소독용 솜을 들고 간호사가 상냥하게 말한다. 한때는 언니라고 불렸고 한때는 아주머니라고 불렸는데. 나는 괜히 심술이 난다. 혈당체크는 병원에 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피를 보는 건 왠지 소름이 돋아서 나는 잠깐 고개를 돌린다.

“정상이세요.”

정상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의 손은 보는 것만큼이나 매끄럽고 보들보들하다. 진료실 쪽에서 “김경주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라는 방송이 나오자 간호사가 진료실로 안내해주려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 팔에 느껴지는 간호사의 온기가 좋다. 어린 여자한테서는 늘 봄 냄새가 난다.

의사는 새하얀 가운을 입고 창문을 등지고 앉아있다. 진료실 안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해 있던 의사의 눈이 이쪽을 향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마가 드러나도록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고 테가 없는 안경을 꼈다. 손은 청결하고 길쭉한 편이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나는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반했다. 식사는 잘 하고 계세요?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나요? 운동은 하시지요? 나이가 들수록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좋아요.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단 뜻이지요. 많이 걸으세요.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 것도 좋고 가볍게 뜀걸음을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동네에 친구 분들 있으시죠? 자주 만나세요. 나이가 들면 사람들과 더 자주 어울리고 말도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치매예방에 좋지요. 화투를 치거나 게이트볼을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요. 책을 읽으면 뇌가 활성화되니까. 내게 이런 말이라도 좀 건네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어디가 안 좋으세요?”

나는 쉰이 넘은 이후로 수없이 할머니라고 불려왔지만 그의 입을 통해 들으면 언제나 슬프다.

“지난밤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어.”

나는 과장되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다른 약을 처방해 드리죠.”

의사와의 면담은 고작 5분이면 끝이 난다. 나는 진료실을 나서기 전에 언제나처럼 뒤돌아보았다. “의사선생!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아. 이런 날은 산책을 나가보는 게 좋지” 라고 말하려다 관두었다. 문이 열렸고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다음 환자가 눈치도 없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곰이 다가왔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 좀 기다리지 그랬냐며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묻는다. 먹고 있던 당뇨약 대신 다른 약을 처방해줬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후부터 안개비가 내리더니 밤이 되자 빗줄기가 강해졌다. 내일이면 날이 한층 차가워 질것이다. 비가 와서인지 온 몸이 퉁퉁 붓고 발끝이 저릿저릿했다.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약이 서랍장 어딘가에 있을 텐데.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대 서랍장을 뒤진다. 당뇨약, 두통약, 소화제, 소독약, 각종 상처에 바르는 연고, 반창고, 이쑤시개, 면봉, 실과 바늘이 담긴 깡통, 금이 간 손거울, 낡은 손지갑, 오래된 화장품 등이 나온다. 찾는 약이 나오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 증상은 어쩌면 새로 처방받은 당뇨약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새로 받은 당뇨약의 사용설명서를 읽어봐야겠다. 당뇨약통에서 사용설명서를 꺼내 펼친다. 글씨가 너무 작아 읽을 수가 없다. 머리맡에 놓아둔 돋보기안경을 집어 든다. 경고란을 읽는다. 드물게 유산산증(Lactic acidosis)을 일으킬 수가 있고 인슐린, 설포닐우레아계 등 다른 당뇨병용제와 병용 투여하는 경우 드물게 중증의 저혈당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뭐래는 거야? 유산산증? 유산산증의 시작은 때때로 구별이 어렵고 권태, 근육통, 호흡곤란, 심해지는 졸음과 복부 통증과 같은 비특이적 증상들을 수반한다. 어라 이건 내가 느끼는 통증과 흡사한데. 권태와 근육통은 내 몸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어디보자. 산증이 더 심해질 경우 체온저하, 저혈압과 저항성 서맥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와 의사는 이러한 증상들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어야한다. 의사는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왜 나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지. 내가 너무 무식해서 못 알아들을 것 같았나? 아님 자신의 권위추락을 염려해서? 갑자기 모든 것들이 심각해진다. 저녁에 식욕이 전혀 없었던 것도 사지에 힘이 없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전립선암을 선고받고 몇 년 뒤에 돌아가신 아버지. 폐암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술에 취해 겨울밤 동사한 동네 이 씨, 자다가 심장발작으로 죽은 친구, 교통사고로 죽은 막내 조카, 그리고 남편. 모두 나 보다 일찍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다. 이제 정말 내 차례일까? 죽음은 자연의 순리인데 왜 죽음을 생각하면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 들지. 아직은 스스로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예민한 것인지도 모르고. 비가 오고 그냥 몸이 좀 안 좋은 것일 뿐일지도. 생각이 이쯤 이르자 몸이 멀쩡해진다. 정신도 말짱해진다. 잠은 달아난 지 오래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리다 결국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거친 빗줄기가 지면으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게 보였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부산하게 마당을 오가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편은 젊은 날 소방공무원으로 일했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나서 우리부부는 의논 끝에 이곳에 집과 땅을 샀고 남편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텃밭에다 고구마와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등을 심었다.

막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아침나절에는 남편이 병아리를 키우겠다며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녀석들을 사들고 왔었다. 남편은 팔을 걷어붙이고 어린아이마냥 한껏 들떠서 뜰 한쪽 구석에 직접 닭장을 만들었다. 지붕에는 양철판을 올려놓았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위로 빗방울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곤 했다. 병아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결국 닭이 되었다. 낮에는 남편이 닭장 문을 열어두어 닭들이 먹이를 찾아 온 뜰을 헤집고 다녔다. 놈들은 아무데나 똥을 누고 알을 낳았다. 나는 놈들이 숨겨놓은 알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겨울동안에는 일거리가 별로 없었다. 남편과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는 사람을 불러 거실 한복판에 쇠난로를 설치했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다 고구마를 구워먹을 수도 있었다. 도시생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온한 나날이었다.

드세진 빗줄기 사이로 뜰 한쪽에 있는 물푸레나무가 머리를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푸른 성광이 때때로 어둠을 가르고 땅으로 떨어졌다. 이 집에 이제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흉물스럽게 뜰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닭장 안에서 언뜻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 것 같기도 했다. 혼자 사는 노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늙은이들이 죄다 돈을 모으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고 믿는 한심한 얼간이들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건장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흉기를 휘두른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게 될지도 몰랐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현관문이 잠겼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건망증 때문에 요즘 주전자에 물을 끓이다 잠이 들고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가고 문단속을 깜박하는 날이 더러 있었던 것이다. 불안을 떨쳐내고 싶어서 불을 켜고 모든 문들을 모조리 점검했다. 다행히 문은 확실히 잠겨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온 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을 달래줄 따뜻한 차가 필요했다. 부엌으로 들어가 차를 끓이고 TV를 켰다. 채널을 이러 저리 돌리다 즐겨보는 드라마를 찾아냈다. 따뜻한 엽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익숙한 얼굴들이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걸 보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나왔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일 곰이 오면 물어봐야겠다.

언제나처럼 11시에 곰이 찾아왔을 때 그녀에게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다는 걸 생각해냈지만 그게 뭔지 몰라 물어보지 못했다. 오후에는 무영이 삶은 고구마를 들고 놀러왔다. 무영은 교통사고로 일찍 남편을 잃고 약사인 딸이 마흔이 넘어 시집을 가고 나서 혼자살고 있는 나의 이웃이다. 그녀는 나와 달리 자신을 위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양한 책들을 읽고 볼테르의 현명한 충고대로 뜰을 가꾸며 지낸다. 그녀의 집 정원에는 봄이면 튤립과 아이슬랜드 포피와 팬지가 만개하고 여름이면 스프링클러가 잔디 위로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녀는 무료한 시간에 주운 개와 입이 거친 초록색 앵무새를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경로당에 나가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혼자 살아가는 일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해가 좋아.”

나는 따뜻한 엽차를 준비해 평상으로 나갔다. 늦가을 햇살이 그녀의 머리 위로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한때는 소녀였는데. 곱게 화장을 했지만 무지막지하게 올라온 검버섯과 이마와 입가에 생긴 굵은 주름을 감추지는 못했다. 시간이 농간을 부린 것 같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고구마를 베어 물때 그녀의 틀니가 보인다. 우리는 고구마를 먹으며 번갈아가며 방귀를 끼었다. 잡곡밥과 고구마를 즐기는 식생활 때문이라고 서로를 위로했지만 그 이유때문만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방귀냄새가 지독할 때면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피하기도 했다. 무영이 돌아가고 난 뒤 친근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곰이 돌아가기 전에 두부와 무를 넣은 된장을 끓여놓고 버섯볶음과 콩나물 무침을 준비해두고 갔다.

티브이를 켜둔 채 식사를 시작했다. 된장찌개는 싱겁고 나물은 질기고 밥은 오랫동안 입안에서 뒹굴었다. 함께 저녁을 먹자고 무영을 붙잡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틀니를 닦고 남편이 늘 누워 잠들던 자리에 누워보았다.

남편의 사고는 갑작스러웠다. 욕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오다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쓰러질 때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남편은 의식을 회복했지만 왼쪽 반신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언어장애도 생겼다. 나중에 남편은 혼자서 밥을 먹지도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해서 나는 하루 종일 그의 곁을 지켜야만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남편은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거나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돌보지 않자 텃밭은 제멋대로 자란 풀들로 엉망이 되어버렸고 닭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남편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점점 더 나빠졌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고 음식투정이 심해졌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짠 것도 안 되고 매운 것도 안 되고 싱거운 것도 안 되고 육류와 기름진 음식을 피해 만들다보니 음식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남편은 아이처럼 맛이 없다며 뱉어내기도 했다. 나는 때때로 그를 얼러서 음식을 먹여야만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갔다. 누군가 인사를 하면 그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인사를 건넨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남편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왜 인사를 했냐고 물으면 남편은 그쪽에서 먼저 아는 체를 해 와서 인사를 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아프고 나서 우리는 자주 화투를 쳤다. 남편은 계산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건 단지 비슷한 모양의 그림을 찾는 정도였다. 화투를 넘겨서 같은 그림이 나오면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남편의 상태가 좀 더 나빠지고 나서는 함께 그림을 그렸다. 나비나 꽃, 동물, 사람, 새, 기차와 같은 단순한 그림을 그려 크레파스로 채색을 했다. 남편은 동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목이 짧은 기린, 날개가 없는 새, 눈이 없는 사자를 자주 그렸다. 채색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빨간색으로 바다를 칠하고 까만색으로 꽃잎을 칠하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해서 남편에게 그런 색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주기도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여서 그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그림은 초현실주의 작품 같은 매력이 있었다. 남편이 보는 세상이 거기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뇌는 점점 까맣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결국 자신의 이름도 나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곰이 오지 않는 일요일이면 나는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낸다. 할 일 없는 늙은이들이 잔뜩 모여 시간을 죽이는 곳이 경로당이다. 경로당에 출입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수다쟁이들로 누군가 자식자랑을 하면 질세라 자식자랑을 늘어놓고 누군가 연금액수를 말하면 부풀려진 액수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가끔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끝이 날 즈음에는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 집 딸은 요즘 자주 안 와?”

동네 어귀에 혼자 사는 입심 사나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내게 묻는 것인지 모르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봐. 안 들려?”

그제야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딸내외가 나를 돌보기 위해 그들의 생활을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딸 내외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영은 화장실에 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긴장해서 그런지 진땀이 흐르고 갈증이 났다.

때마침 경로당 문이 열렸고 젊은 여자가 막걸리와 족발과 잡채와 묵이 담긴 쟁반을 가져다놓고 나갔다. 음식이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 그쪽으로 향했다. 늙은이들은 음식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천진해졌다. 남편이 좋아하던 족발이 눈앞에 있었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당뇨 때문에 달고 기름진 음식은 피해야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음식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먹어봐.”

누군가 막걸리를 내민다. 나는 사양했다. 그러나 한 번 더 권하자 결국 마셔버렸다. 누군가 족발을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맛이 괜찮았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무영이 제지했지만 계속 먹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영은 은행에 들른다며 시내로 나갔다. 경로당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나는 한쪽 다리를 끌며 혼자 걸었다. 과식을 한 탓인지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몸이 긴장으로 한순간 팽창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바지에 똥을 싸고 만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들도 똥을 싼다.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자신이 태어나서 한동안 기저귀에 똥을 쌌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아이는 성인이 되고 늙고 병들어 다시 기저귀에 똥을 싼다. 시작과 끝만 본다면 똥을 싼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사실 똥을 눈다는 것은 신성한 활동이다. 똥으로 장을 채워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먹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뇌가, 아니 항문이 똥을 누는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똥을 아무 때나 내보내는 것이다. 나의 항문은 수십 년간 그 일을 해왔음에도 이제 와서 언제 어느 때 똥을 내보내야 할지 잊어버렸다. 나는 똥을 그대로 속옷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이고 저녁 무렵이었다. 깜깜해야할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딸내외가 와 있나? 이대로 들어가면 놀랄 텐데.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현관 앞에 낯익은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곰이 와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곰이 나왔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가오더니 킁킁거린다.

“똥 쌌어?”

곰이 내 몸에 자신의 코를 바싹 들이대고 또다시 킁킁거린다. 이제 신이 나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내가 똥 싼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닐 것이다.

“상관 말고 돌아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야.”

곰이 내 말은 안 듣고 나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냄새를 피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당당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 옷들을 차례로 벗겨나갔다. 나는 바지를 벗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녀에게 귀찮은 일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벗어! 벗어야 씻지.”
“안 쌌어. 안 쌌다니까.”
“냄새가 나는데.”

마침내 내 몸에서 옷들이 몽땅 벗겨져나갔다. 곰은 무표정한 얼굴로 샤워기로 내 몸에 물을 뿌리고 나서 욕조에 앉혔다. 따뜻한 물이 욕조 안으로 콸콸 쏟아졌다. 곰이 때수건으로 쭈글쭈글해진 내 젖과 겨드랑이와 허벅지를 문질러댄다. 나는 이제 최대한 협조적으로 굴며 거울을 통해 나를 본다. 욕조 안에 앉아 있는 늙은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거울에 비친 늙은이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늙었을 리가 없었다. 염병할!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주말에 내려와서 마늘장아찌를 가져가랬더니 시간 없다고 투덜대던 딸이 다음날 집으로 찾아왔다. 딸은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보건소로 데리고 가서 치매 검사를 받게 했다. 안경을 끼고 몸집이 좋은 여자가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올해가 몇 년도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 월인지 묻는다. 나는 요즘 달력을 잘 보지 않아서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세 가지 물건의 이름을 들려주고 나더러 말해보라고 한다. 방금 들어 나무와 자동차는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 하나는 제대로 떠오르지가 않는다. 여자와 딸이 눈빛을 교환한다. 내가 답을 제대로 못해도 여자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격려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간다. 종이 한 장을 내밀고 오른손으로 받아서 반을 접은 다음 무릎 위에 올려놓으라고 요구한다. 나는 왼손잡이여서 왼손을 내밀어 종이를 받고 접어서는 여자에게 되돌려주었다.

이날 나는 병원에 들러 혈액검사도 하고 뇌영상촬영도 했다. 그날 이후 내 생활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곰이 커다란 가방을 두 개 사들고 내 집으로 들어왔다. 딸내외는 노인요양보호시설을 알아보는 것보다 이쪽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말도 안 된다고 내 허락 없이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곰은 내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더 긴 시간 보호가 필요하다며 딸이 쓰던 방에 짐을 풀었다. 딸은 대학에서 강의를 해야 했고 아내 노릇과 엄마노릇도 해야 해서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곰이 하루 종일 나를 돌보려면 딸내외가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이다.

곰은 평소에 건강한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곰은 요리하는 걸 좋아했고 음식솜씨도 좋았다. 그녀는 식사시간에 시금치와 콩나물, 곱게 채 쓴 당근이 들어간 비빔밥, 고등어조림, 파프리카와 바나나와 양상추가 들어간 샐러드, 두부조림, 양파와 버섯을 넣은 된장, 사과를 넣은 카레, 버섯볶음 등을 준비했다. 그것들이 콜레스테롤이 없는 음식들이란 걸 나는 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매일 산책도 시켜준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두툼한 겉옷을 꺼내오고 목에 머플러를 감아주고 오렌지색 모자도 씌워주었다. 나는 그 모자가 내 머리를 거대한 귤처럼 보이게 해서 싫어했지만 곰은 그 모자를 내 머리에 씌우는 걸 좋아했다.

“잠깐만 기다려.”

오늘도 귤껍질 같은 모자를 내 머리위에 씌워 소파에 앉혀두고는 가방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더니 화장을 시작한다. 장밋빛 볼에 정성들여 자외선 차단제를 펴 바르고 눈썹을 긋고 마스카라를 바르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다. 촉촉이 젖은 그녀의 입술을 보자 괜스레 심술이 난다. 립스틱 뚜껑을 닫으려던 곰이 이쪽을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온다.

“어디보자. 경주 씨한테도 어울리겠는데.”

다짜고짜 다가온 곰이 내 입술에다 립스틱을 가져다 대었다.

“저리 치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우와. 진짜 예뻐지셨네.”

그녀가 자신의 손거울을 보여준다. 작은 거울 속에 낯설게도 활짝 웃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 보인다.

너무 좋아하는 걸 들켜버려 수치스러워진 나는 또 심술을 부린다. 갑자기 걷기 싫다고 산책을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그럼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되지.” 그녀가 말한다. 몸이 좋지 않거나 산책 나가는 게 귀찮을 때 나는 종종 걷기 싫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곰은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간다. 내가 질색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 경주 씨라고 나를 소개했다. 오늘 곰이 산책코스로 선택한 곳은 다리 건너편에 있는 공원이었다. 공원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와 있는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늘 무리를 지어 한쪽에서 장기를 두거나 말끔하게 차려입고 담배를 피며 정치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머니가 텅텅 비어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곰은 집을 나서면 언제나 마치 계란장사꾼처럼 군다. 내가 탄 휠체어를 끌며 그들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내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계속 시선을 피해야만 한다.

“저쪽에 가서 좀 쉴까?”

곰이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살펴본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반백의 머리를 뒤로 넘기고 퀼팅점퍼에 카키색 코르듀이 바지를 입은 노인이 앉아 있다.

“마음에 들어요?”
“괜한 짓 하지 마.”

내가 그녀의 오른팔을 꽉 눌렀지만 소용없다. 곰은 연못 쪽으로 가려다말고 갑자기 방향을 바꿔 그 노인 쪽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죄송한데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제가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우리 경주 씨 좀 부탁드려요.”

코르듀이를 입은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까이서 보니 노인은 머리에 비듬도 없고 앞니도 말짱했다.

“나도 갈 테야.”
“경주 씨는 집에서 나오기 전에 다녀왔잖아요. 여기서 기다려요. 정말 급해요.”

말을 마친 곰은 우리만을 남겨두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날씨가 차가워졌다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미소를 짓자 왼쪽 볼에 한때는 사랑스러웠을 보조개가 살며시 드러난다. 그가 이번에는 성은 뭐지요, 라고 묻는다. 나는 작게 대답한다.

“따님이 경주 씨를 많이 닮았네요.”

곰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그가 말한다. 나는 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풍선을 들고 뛰어가던 한 아이가 넘어지자 그는 젊은 남자들처럼 지체 없이 움직여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무릎에 묻은 흙도 털어준다. 아이엄마가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나는 잠시 그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우쭐해져 고개를 까딱이며 아이엄마를 바라본다. 얼마 후 곰이 돌아와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휠체어를 밀고 걷기 시작했다.

“다신 그러지마. 또 한 번 그랬다가는 가만 안 있어.”

내가 투덜거리자 곰이 휠체어를 멈추고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춘다. 곰의 눈에 나의 미니어처가 들어 있다.

“기억소멸대책이야. 사람들이 경주 씨를 알아야하니까.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경주 씨가 사람들을 모두 잊어버려도 사람들이 경주 씨를 알아봐 줄 테니까.”

곰이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윙크를 한다. 햇살이 곰의 머리와 어깨 위에서 반짝거렸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늙은 거죽 속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감춰 둬야하는 게 힘이 든다.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이 살짝 코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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