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아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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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혁作
젖은 빨래는 묵직하다. 머금은 물이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누군가의 눈물처럼 흐른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범람 했던 자리라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기가 마른다. 내 눈물도 그랬을까.

산후조리 중이었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는 9시에 출근이라, 아침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줬다. 아이가 일찍 깨면 분유를 타서 가져다주고, 쌀을 씻어 안치고, 쓰레기까지 말끔히 정리했다. 그 날은 다른 날보다 바빠 보였다. 나는 5살 첫째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둘째의 사이에 누워 뒤척였다. 남편은 욕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고 텀벙대는 물소리만 들렸다.

“자기야, 뭐해?”

내 물음에 그는 바로 응답했다.

“빨래해. 어제 낡은 공장에서 전기 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옷이 엉망이 됐거든.”

남편의 옷은 사무실에서 전기도면 작업하는 날은 깨끗했고, 작업 현장에 나가는 날에는 먼지투성이가 되곤 했다. 비가 온 날은 흙탕물에 빠진 것 같았다. 심할 때는 애벌빨래를 해야만 세탁기에 넣을 수 있었다. 전날 밤엔 늦게 퇴근해 아침부터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출근시간에 쫓기면서도 빨래를 널었다. 그 날, 남편의 손은 아침부터 흠뻑 젖어 있었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와 멀어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갔다 올게.”

나는 남편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바쁘게 나가는 그의 뒷모습과 한 손에 든 쓰레기 봉지를 보며,

“잘 갔다 와.”

했다. 그는 그렇게 집을 떠났다.

아이들은 보채다가 낮잠을 자고,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는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했다. 집안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고, 바깥은 살벌할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한 통의 전화가 집안의 정적을 깼다. 그 전화는 나를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았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속에 잠겼다.

“말도 안 돼.”

나는 그 말만 되풀이했다. 원하지 않는 나에게, 머리는 재현하듯 상황을 그렸다. 남편의 젖은 손과 그 손으로 파고 들어간 강한 전류. 생각만으로 진저리쳤다.

그 사람에게 뛰어갔었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아이들을 그냥 두고 나갈 수 없었다. 나는 섬뜩할 만큼 이성적이었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를 다시 부르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그 사람이 나만 두고 먼저 갔대. 병원으로 좀 가 줘.”

거실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돌아다녔다.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도 무심한 통화음만 반복되었다. 내 속은 미쳐 날뛰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방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홀로 택시를 탔다. 창문 위로 빗물이 끓임 없이 흘러내렸다. 오한이 들고 떨렸다. 아버지에게 전화해 나도 믿지 못하는 일을 전했다. 누군가 빨리 내 곁에서 나를 잡아줬으면 했다. 그러기에는 모두가 너무 멀리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쏟아지는 비로 꽉 막혔다. 창밖은 뿌옇고 흐려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곳을 향해 가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시간은 장마의 한 가운데에서 젖은 채로, 발이 묶여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응급실이 아니라 영안실로 가랬다. 곤히 잠 든 남편을 봤다. 틀림없는 그였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해 보였다. 낯선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막았다. 사고 경위를 조사해야한다는 차가운 말이 날아왔고, 손조차 만지지 못하게 했다. 손만 잡으면, 그가 내 손을 감싸 쥐고, 집에 가자고 할 것 같은데, 난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그를 바라만 보고, 그냥 두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그가 있는 곳의 문을 다시 두드리고 싶었다. 왜 그들이 내 남편을 잡아두고 내가 만지지도 못하게 한단 말인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앉았고, 언니는 나를 안고 울었다.

난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엔 망상이 돌아다녔다. ‘혹시,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아닐까. 문이 잠겨 못 나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를 구해야 해.’ 그가 다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전화가 울리면 그가 집에 온다는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차례의 헛된 기다림이 계속 되었다. 영안실에서 본 온기 남은, 그의 모습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주검을 마주하고 집에 돌아왔다. 온통 눅눅하고 찝찝했다.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 위로 떨어져, 다시 아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가 바동거렸다.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렀다. 삼킬 수 없는 울음이 목에 걸렸다. 막힌 숨을 토해내느라 노래는 자꾸 끊어졌고,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지치지 않고 이어졌다. 둘러봐도 집안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눈을 돌리다 베란다의 빨랫줄에 눈이 멈췄다. 그가 아침에 널어놓고 간 껍데기가 보였다. 젖은 채로 늘어져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원래대로 마르기 위해 애를 쓰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왜 안 와?’

난 되물었다.

‘넌 거기서 뭐하고 있니. 이제 그는 없는데….’

그는 몰랐다. 평소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아침이 오면 다시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이 계속될 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빨래를 빨아서 널고, 마르면 다시 입으려고 생각했을 거다. 나와 같이 늙어가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몰랐다. 우리의 삶이 한 순간에 깨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 순간에 서로가 넘을 수 없는 다른 세계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허우적대며 서로를 애타게 찾아도, 우리는 닿을 수 없었다. 장마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한없이 물기를 내뿜고 있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젖은 빨래가 말라가도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이생의 물기를 다 털고 가볍게 훨훨 날아갔을까. 남편이 남겨두고 간 마른 껍데기를 태웠다. 남겨진 내 마음도 그것들과 같이 타들어갔다. 바스라질 듯 타버린 내 마음 안으로 서서히 아이들이 들어왔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내 마음을 적셨다. 그의 눈빛을 닮은 눈동자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웃었다. 나도 바보처럼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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