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병진 새경북포럼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어느 모임에 갔더니 사회자가 회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넌센스 퀴즈를 냈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가 언제냐는 물음.

이런저런 답들이 모두 ‘땡’ 처리가 되고 정답이 ‘철이 들었을 때’라고 했다. ‘철이 들다’의 철을 무쇠를 말하는 철(鐵)자와 연결시킨 퀴즈였다. 그럴듯한 퀴즈라고 생각했다.

‘철이 나다’, ‘철들다’의 ‘철’은 순우리말로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 판단력, 분별력, 자각(知覺)을 의미하며 ‘철들다’함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 지각들다, 철에 알맞다, 계절(때)에 맞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철의 원래 어원은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겨울철, 봄철, 등)이었다. 이것이 주역의 영향을 입어 지혜를 나타내는 말로까지 쓰이게 되었다.

철들었다 하면 지혜와 사리 분별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말이 되며, 흔히 어른스럽지 못하던 사람의 행동거지가 의젓해지면 철들었다고 말들을 한다.

나는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것 같다. 일곱 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름철엔 날마다 마당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라 하지만 양식을 늘려서 먹기 위해 호박이나 부추를 많이 넣고 국수는 별로 없는 멀건 국이다. 당시 쓰던 말로는 ‘늘엉국’이었다. 아마 양식을 늘려서 먹기 위한 음식에서 나온 명칭인 것 같다.

뜻밖의 손님이 오면 물 한 바가지 더 부으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어머니께서는 열세 식구의 그릇에 칼국수를 다 담아주시고 당신의 것을 긁어모아 담으려 할 때 “좀 더 주세요” 내가 그릇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당신의 몫을 한 국자 덜어 주셨다. 얼마나 철이 없었던가.

그 후로 자주 그때의 일이 부끄러움으로 떠오른다.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도 얼굴이 후끈거린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흉년에 어른은 굶어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는 말도 나같이 철없는 아이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어머니 배고플 것은 생각지 않고 제 생각만 한 철부지.

철이 남보다 일찍 든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 중에 조선조에 정순왕후가 있다. 영조의 나이 66세에 왕비가 죽고 새 왕비를 간택하는 자리. 오색이 찬란한 비단옷으로 몸을 감은 여러 재상가의 따님들이 황홀하게 치장을 하고 즐비하게 수놓은 방석 위에 앉아서 영조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김한구의 딸만 서 있었다. 왕이 까닭을 물으니 아비의 함자가 적힌 방석에 감히 앉을 수 없어서 서 있다고 답했다 한다. 그 외에도 세상에 가장 깊은 것은 사람의 마음,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백성들의 의복을 만드는 면화(목화)라고 사려 깊은, 철이 든 대답을 하여 왕비에 간택되었다고 한다.

일찍 철이 들어 왕비가 되었지만 행복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66세의 왕과 결혼한 15세 왕비의 일찍 든 철이 오히려 노론과 소론의 당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인성교육을 나이에 맞게, 상황에 맞게 철이 들어가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철이 너무 없어도 모자라는 사람, 망나니 같은 사람이지만 너무 일찍 들어도 애 늙은이가 된다. 철들자 죽는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수양하고 지혜를 받아들여 자기완성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철든 죽음이 한 인생의 완성이기에 평생교육이 갈수록 강조되는 것이리라.

우리 경주에도 평생교육관이 들어서고, 노인 종합복지회관이 설립되어 평생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저께 뒷동산에 오르니 만추의 한기 속에 핀 모자라는 개나리가 있었다. 철모르는 개나리는 있어도 사람은 제때에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내 나이에 맞게 철이 들도록 많이 읽고, 많이 보고, 여행도 하며 마음공부를 하리라 다짐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