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에서 사람을 들이받아 죽이고 탈출했다는 소의 배와 넓적다리엔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자신의 똥 위에 자고 먹으며 자라난 소였다. 파란 풀도 덮이지 않고 나뭇잎도 돋아나지 않은 야산에서 소는 소방관들이 쏜 마취주사 두 발을 맞고 마비되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서 있었다. 불끈 솟아난 두 뿔 위에 생강나무 꽃이 노오란 빛을 뿌리며 살랑대고 있었으나 소는 꽃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박은 채 바위가 되어 있었다.





<감상> 소의 배와 다리에 똥이 묻어 있는 걸 봐서 외양간에서 길러진 일소였을 겁니다. 소가 살림살이의 전부였을 때는 이삼십년 주인과 생사를 같이 하고 고이 땅에 묻혔습니다. 기계화로 일소의 소용은 다해지고 도축장으로 갔으니 죽음 앞에 울음마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니 도망칠 수밖에 없고 봄날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운들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소가 죽음의 공포에 질려 바위처럼 얼어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처럼 인간도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공포가 더 무서울 겁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기에 죽음은 공평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